[박현동 칼럼] 다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다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입력 2021-07-27 04:20 수정 2021-07-29 10:52

집단감염 대응 조치 자화자찬
부끄러움 모르는 한심한 처신
국민 위한 국정운영 아쉬워

대통령 사과는 법적 의무 아닌
리더로서의 도리이자 책무로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

물은 배 띄우지만 뒤집기도 해
국가가 국민 보호하지 않으면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지 않아

코로나 집단감염으로 귀환된 청해부대원이 전한 상황은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이 국가에 물었던 질문을 7년이 더 지난 지금 다시 되묻게 해야 하다니 서글프고 분하다. 그는 “목이 너무 아팠고 피가래가 나왔지만 해열제만 먹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의 폭로는 “국가가 우리를 버린 것 같다. 이제 군복을 벗으려 한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끔찍한 절규다. 이역만리 망망대해에서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체념,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2021년 7월 대한민국 군에서 일어난 일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송구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청해부대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8일 만이다. 때늦은 사과다. 대통령은 이에 앞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누가 봐도 ‘사과’보다 ‘질책’에 방점을 뒀다. 게다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도 아니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니.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해서 권위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군 통수권자로서 “최종적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했다. 4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청와대와 군은 자화자찬했다. 정부는 집단감염 군인들을 귀환시키는 데 공중급유수송기를 동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도 이 생각을 못했는데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칭송했다. 적절한 지시였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은 빼는 게 옳았다. 아부도 이쯤 되면 병이다.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을 위한 국정운영인지, 국민을 위한 국정운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말 화가 치민다.

심지어 군의 처신은 실망을 넘어 애처롭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원의 신속한 귀환은 군사 외교력이 빛을 발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군인을 사경에 몰아 방치하고도 고작 한다는 소리가 ‘군사 외교력’이라니 낯 뜨겁지 않은가. 더 한심한 일은 과자를 ‘국방부 장관 격려품’으로 보내고 “쾌유와 건승을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러고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 운운할 수 있는가. 북한 매체마저 “군부의 부실한 대응이 불러온 것”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군인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유사시엔 명령 하나로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그들을 보호하는 건 국가의 책무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백번 양보해 집단감염은 있을 수 있다고 치자. 아무리 방역이 철저해도 빈틈은 있을 수 있고, 함정이라는 구조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일정 부분 이해된다. 문제는 발생 그 자체보다 사후 대응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랬지만 도대체 뭣이 중한지 모두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의 사과만 해도 그렇다. SNS 사과가 아닌 육성 사과가 그렇게 힘든가.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법에 의한 의무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도리이자 책임이다.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배려다. 그런 대통령의 사과를 통해서 분을 삭이고, 위로받는다. 그게 국민의 마음이다. 무엇보다 사과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인색할 이유가 없다.

물론 말처럼 대통령의 사과가 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운영의 실패 내지는 잘못을 자인하는 셈이고,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리더의 숙명이고, 이를 수용하는 건 리더의 용기다. 이처럼 대통령의 말이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대통령이 더 빨리, 그리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사과했더라면 그들은 지금 비록 몸은 아프지만 국가에 대한 배신감은 덜 느꼈으리라. 그런다고 모든 잘못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빠졌던 2016년 당시 교수들이 그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택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는 이 말은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경구다. 이미 경험했듯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민은 국가를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 진정성 없는 사과, 때를 놓친 사과 또는 어설픈 사과는 되레 더 큰 화를 부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우리는 충분히 봤고,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다시는 비극의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