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지나가는 노을을 잡다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지나가는 노을을 잡다

이원하 시인

입력 2021-07-28 04:04

부엌 창밖으로 뜨거운 기운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녁을 데우는 노을이었다. 나는 고기 구우려고 달궈둔 프라이팬을 뒤로한 채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지금 당장 노을 아래를 걸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대가는 감격스러울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동네를 한 바퀴만 돌려던 여정은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멈춰졌다.

충동적이며 때론 무모하게 느껴지는 나의 이런 면은 과거에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친 수많은 경험에서 왔다. 초등학생 때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며 매일 노래와 춤을 연습했었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집 앞 놀이터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노래 부르는 바람에 동네에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3년을 연습해놓고 고작 망설임 때문에 기획사 오디션을 못 봤다. 아이돌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시원하게 놓쳐버린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오디션을 보고 합격까지 했다면 지금쯤 나는 소녀시대 멤버가 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망설이다가 사랑하는 남자까지 친구에게 빼앗긴 뒤로 평생 죽도 밥도 되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성격을 바꿔버렸다. 무모하더라도 도전해보고 후회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무작정 배우가 되겠다며 연기학원에 등록했었다. 작은 배역이라도 따내기 위해 영화사를 돌아다니며 프로필을 돌리고 오디션도 봤었다. 결과적으로 배우가 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도전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어떠한 미련도 후회도 없다. 이후 제주도에서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급히 제주도로 떠났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음만 가지고 출발한 거라서 초반에는 힘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덕분에 제주도에서 시인이라는 근사한 정체성을 얻게 됐다. 남은 인생 또한 과감히 실천하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살 거다. 지금 내가 봄날의 햇살처럼 기척도 없이 찾아온 사랑에 거침없이 손을 뻗은 것처럼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