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능력주의 논란에 불려온 양궁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능력주의 논란에 불려온 양궁

송세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입력 2021-07-29 04:02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촉발한 능력주의 논란이 한국 양궁까지 소환했다. 양궁 국가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도입된 혼성단체, 여자단체, 남자단체에서 3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남녀 개인전까지 5개 전 종목 석권도 가시권에 있다. 그 비결이 철저하게 실력과 능력으로 경쟁하는 대표 선발 과정에 있다는 분석이 능력주의 논란으로 접목됐다.

한국 양궁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다. 특히 여자단체에선 이 종목이 처음 도입된 1988 서울올림픽 이후 한 번도 정상을 놓지 않았다. 스포츠 경기는 경기장 환경, 당일 날씨, 선수 개인 컨디션과 정신 상태 등 많은 변수에 노출돼 있다. 양궁은 야외 경기여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게다가 세계양궁협회는 한국 양궁을 견제하기 위해 토너먼트와 세트제를 잇달아 도입했다. 이런 변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33년간 9연패를 이뤘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은 무자비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스포츠에서 왕조 중 왕조”라고 극찬했다. AP통신은 한국을 ‘최강 양궁의 나라’로 지칭하며 “선수들은 바뀌어도 한국 여자 양궁의 지배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격차’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최강 경쟁력의 원천은 일종의 능력주의다. 한국 양궁은 2019년 대표팀 1차 선발부터 모든 선수가 참여하게 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여도 세계랭킹이 높아도 예외는 없었다. 1인당 총 2500발을 쏴야 하는 지독한 경쟁이었다. 그 결과는 강력했다.

하지만 스포츠의 능력주의를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스포츠의 기본 원리는 경쟁이고 과업과 목적 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사회는 다르다. 공동체로서 경쟁뿐 아니라 연대와 협력도 중요하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 같은 공동체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스포츠를 통해 공정한 절차, 공정한 경쟁의 힘과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은 유효하다. 절차가 공정하면 패자도 승복한다. 실력만 갖추면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부분은 이 대목이다. ‘너무 어리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하다’ 같은 이유로 절차의 공정성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실력 외적인 요소를 무조건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학연 지연 혈연에 따른 특혜를 은폐해온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가 이를 극단화해 만인 대 만인이 무한 경쟁하는 사회를 전제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로 흐르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해 달라는 것, 합의된 규칙을 존중해 달라는 게 그들이 가진 문제의식의 합리적 핵심일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이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20대가 퇴행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다른 생각에 대한 ‘악마화’ 전략과 다를 바 없다. 극단적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 배경에 있는 건강한 문제의식을 놓친다면 갈등만 커진다. 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무시한 능력주의가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형식적·절차적 공정도 최선은 아니다. 이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철저하게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 양궁의 성취는 능력주의뿐만 아니라 세대갈등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남자양궁에선 17세의 김제덕과 40세의 오진혁이 원 팀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여자양궁에선 급격한 세대교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인 선수들이 9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나약하고 퇴행적인 2030’ ‘기득권 내로남불 꼰대’로 상징되는 세대 간 불신과 불통을 씻고 협력과 연대로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송세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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