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부 복음화 26년 헌신… 에이즈 환우 돌보며 교회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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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부 복음화 26년 헌신… 에이즈 환우 돌보며 교회 개척

[서윤경 기자의 선교, 잇다] 인도에서 귀국한 조금옥 선교사

입력 2021-08-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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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옥 선교사가 2015년 인도 델리의 에이즈 환자를 돕는 NGO단체 사무실에서 에이즈 환자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그림 성경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조금옥 선교사 제공

6000원. 26년간 인도에서 사역한 조금옥(63) 선교사가 현지 재산을 처분하고 남은 돈이다. 1995년 가방 두 개 들고 선교지로 떠났던 조 선교사는 지난달 다시 가방 두 개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1일 전화인터뷰를 진행하면서 6000원의 의미를 “인도 선교의 결실”이라 설명하는 조 선교사의 목소리에선 기분 좋은 후련함이 느껴졌다.

조 선교사는 95년 10월 국제선교단체인 인터서브 파송을 받아 인도 델리로 갔다. 전북 군산에서 자란 조 선교사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선교사가 될 줄은 몰랐다. 고교 졸업 후 79년부터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며 하나님을 만나 헌신을 약속했을 때도 전도사의 삶만 생각했다.

“늦깎이 87학번으로 총신대 종교교육과 학부에 들어갔어요. 전도사가 되려면 신학과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입학하고 알았죠.”

모르고 들어간 종교교육과는 조 선교사에게 다른 의미의 기회가 됐다.

조 선교사는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했다. 진로를 두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선교사로, 인도로 날 부르셨다”고 했다.

선교를 위해 교원 자격증을 땄고, 94년 총신대 신학대학원도 졸업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럴 만했다. 루스 터커의 ‘선교사 열전’에선 선교지 약자로 여성, 싱글, 선교사를 꼽았다. 조 선교사는 그 조건에 모두 해당됐다.

조 선교사는 “선교의 확신을 갖기 위해 대학원 졸업 후 여행자로 인도를 찾았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확신하게 해 달라, 내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여행 중 조 선교사는 기도의 답을 받았다.

“힌두교 사원에 갔을 때 사원 안 사람들의 발에 사슬이 걸려있는 환상을 봤어요. 하나님은 ‘저들이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고 저에게 말씀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현지인의 눈에선 예수님의 눈빛을 봤다. 마음의 짐을 던 조 선교사는 인터서브 선교 프로그램에 따라 95년 4월 영국에서 영어 연수를 받고 6개월 뒤 델리로 향했다.

조금옥 선교사가 개척한 인도 델리 은혜교회의 주일예배 장면. 조금옥 선교사 제공

인터서브는 선교사 사역을 3년 단위로 진행한다. 이를 텀(term)이라 한다. 한 텀이 끝나면 6개월 안식도 줬다. 조 선교사는 첫 텀 때 델리에서 동료 선교사를 도우며 현지 사역에 필요한 힌디어와 문화를 배웠다. 두 번째 텀은 델리 남쪽의 A도시에서 지냈다.

조 선교사는 “인터서브 선배 선교사의 학교 사역과 제자훈련 센터 운영을 도왔다”며 “이때 교원 자격증 덕을 봤다. 하나님이 모든 걸 계획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 선교사는 A도시에서 생각의 변화를 경험했다.

조 선교사는 “탈수가 일어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전도 중 강도도 만났다. 사건, 사고 후 회복시키는 하나님을 통해 사랑을 경험했다”며 “목표 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중심인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2년 세 번째 텀 때 델리로 돌아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에이즈 환자를 돕는 단체에서 환자와 가족을 위해 일했다. 에이즈 환자 사역과 별개로 델리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배운 청년들은 델리 외곽에 교회를 개척했다.

“10년이 지나니 열매가 보였어요. 에이즈 환자들은 교회에 출석했고 내가 가르친 환자의 아이들은 성장해 대학과 직장에 다니며 교회도 개척했어요. 힌두교도가 예배당 안에 들어올 때의 감동도 잊을 수 없고요.”

사역의 아쉬움도 있다. 조 선교사는 “힌두교 사회는 가부장적이라 여성이 대우받지 못한다. 내가 결혼했다면 그들에게 여성이 아내, 어머니로 존중받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했다”고 전했다.

최근 인도에서의 삶을 마무리한 그는 “싱글 선교사는 한국에 들어오면 새 삶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2, 3년 전부터 결정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를 떠났지만 인도를 위한 기도제목을 나누는 건 잊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했으면 해요. 다행인 건 코로나19로 SNS를 활용한 소그룹 모임이 생겼다는 거예요. 사역자와 평신도 결속을 다지고 성경을 알아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북인도 출신 교회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다양성의 나라 인도는…

-인도, 어떤 나라인가.

“인구수만큼 신도 많고, 언어도 많다. 날마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 지루할 틈 없는 나라, 어수룩해 보이지만 어수룩하지 않은 나라다. 삶이 종교이고, 극상부터 바닥까지 다양성도 존재한다. 양념 종류가 가장 많은 나라라 가정마다 음식 비법이 있다.”

-사역한 북인도 지역은.

“북인도엔 수도 델리가 있다. 이 지역은 힌두교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남인도보다 기독교 인구도, 기독교 지도자도 적다. 지속적인 북인도 공략이 필요하다.”

-인도에서 조심할 게 있다면.

“‘남성을 향해 웃지 말라’. 처음 인도의 인터서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남성은 여성이 자신을 보고 웃으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인도는 하체를 가리는 문화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 짧은 치마는 피해야 한다.”

-인도 선교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팁이 있다면.

“인도에서 기독교는 외래종교다. 인도의 기독인 중엔 선교사에게 믿음을 전수받기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재정을 원할 때도 있다. 합법적으로 외국인이 땅을 사서 교회를 세울 수도 없다. 파송교회 눈치가 보여도 교회건축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인도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빨리, 빨리’는 포기하면 좋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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