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마침내 돌아온 장군, 마지막에 탈출한 대사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마침내 돌아온 장군, 마지막에 탈출한 대사

입력 2021-08-25 04:20

홍범도 장군 유해 최고 예우로 서거 78년 만에 현충원 안장
응당 진작 했어야 할 국가의 책무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서도 마지막까지 교민 곁을 지켜
공복의 모범 보인 최태호 대사
강요된 애국 아닌 자발적 애국이라야 진정한 힘을 발휘

여느 때와 다른 광복절이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유해가 고국에 돌아온 덕분이다. ‘장군의 귀환’이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한 지 78년 만의 고국 나들이다. 항일전쟁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을 모시는 데 참으로 긴 세월이 걸렸다. 진작 모셨어야 했다. 유해를 맞으면서 후손들이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늦었지만 고국 땅에서 평안한 영면에 드시길 기도한다.

장군의 유해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100주년인 지난해 모실 예정이었다. 한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계획보다 1년 늦춰졌다. 장군이 귀환하기까지 곡절이 적지 않았다. 1992년 한·카자흐스탄 수교 이래 장군 유해 송환은 역대 정부의 주요 관심사항이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정부 설득도 쉽지 않았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이었다. 장군의 고향은 평양이다. 북한은 장군의 연고권을 내세워 유해 송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했다고 한다. 남북 동시수교국인 카자흐스탄 정부가 양측 눈치를 살피느라 허송한 시간이 길었다. 이제 남북의 체제경쟁을 논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해도 만에 하나 장군의 유해가 북한 품에 안겼다면 문재인정부가 어떤 비난에 직면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장군의 귀환을 계기로 독립운동사가 재조명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일제 강점기 승리의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 참석차 소련에 입국할 때 직업을 ‘의병’, 목적과 희망을 ‘고려 독립’이라고 적은 ‘조사표’를 보고 감동한 이도 적잖다. 더욱이 무장투쟁 중 일제에 의해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잃은 장군을 최고 예우로 국립현충원에 모신 건 마땅히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아직도 낯선 이국 땅에 잠들어 계신 우국지사가 숱하다. 이들 유해 송환에도 조금의 게으름이 있어선 안되겠다. 그것이 친일청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가 독립운동가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속죄 아닐까 싶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정정이 극도로 혼란스럽다. 세계 구석구석 우리 국민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는데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턱밑까지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이곳에 교민이 남아 있었다. 현지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교민은 대사관 측의 수차례 철수 권유에도 머뭇거렸다고 한다. 사업장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아프간 대통령마저 내뺀 상황에서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는 탈출 대신 교민 곁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교민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최 대사는 국내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양복을 챙기지 못했다. 캐주얼 복장을 양해해 달라”고 멋쩍어 했다. 국가의 녹을 먹은 공복의 자세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준 모범사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공직자가 세월호 선장처럼 제 안위부터 챙긴다면 그 정부를 믿고 따를 국민은 없다. 아프간 꼴 되기 십상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아프간 탈출이 우리의 독자적 능력이 아닌 우방국 도움으로 이뤄진 점은 반드시 복기해야 할 사항이다. 아프간 사태, 미얀마 쿠데타 등 외국의 정변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위험에서 우리 국민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는 체계, 장비, 수단 등을 갖춰야 할 때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마냥 우방국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기 앞에선 우방이고 뭐고 자국이 최우선이라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백신 공급 사례가 증명한다.

아프간에는 한국에 협력한 400여명의 현지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우리 공관과 병원 등에서 근무하며 도움을 줬던 이들로 탈레반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했다면 외국인이라도 우리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게 문명국의 도리다. 이들의 국내 이송을 검토하고 있는 정부의 공언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치가 곧 취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교육헌장, 국기하강식으로 대표되는 강요된 애국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대내외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공직자 역시 그에 걸맞은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자발적 애국에 익숙해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