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높은 이상과 초라한 결과

국민일보

[여의춘추] 높은 이상과 초라한 결과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1-08-27 04:05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은 검찰 개혁의 상징 법안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니, 2019년 말 제정되고 2020년 말 수정된 이 법안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의 신설 필요성이 있고, 홍콩 염정공서·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이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독립된 위치에서 엄정 수사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해 고위공직자의 범죄 및 비리 행위를 감시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법안이 기대했던 공수처의 모습, 즉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척결하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공수처 1호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부당채용 의혹 수사인데, 지난 3월 이성윤 서울고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이 공수처 7개월의 상징이 됐다. 공수처는 현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수사방해 및 부실수사 의혹, 야당 의원 비리 의혹 등을 수사·내사하고 있다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공수처가 제 역할을 원만하게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은 무주택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절박한 의도에서 개정됐다. 주택시장의 불안정 속에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주택 임대료가 상승함에 따라 임차가구의 주거 불안과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니,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계약갱신 시 차임이나 보증금을 5% 이상 증액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임대차법 개정안은 반대 결과를 낳고 있다. 임차가구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려고 법을 개정했는데, 법 시행 이후 전월세를 사는 임차가구의 주거 불안이 높아졌다는 국가통계가 나왔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는 법의 목적과 달리 집값은 물론 전셋값과 월세 폭등으로 주거비 부담은 가중됐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언론중재법)도 제안 이유는 흠잡을 곳이 없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와 편파적 기사, 속칭 ‘지라시’ 정보이며,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로 취득한 언론사의 이익을 박탈한다면 예방이 효과적일 것이라 기대되니, 허위·조작정보의 보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해 가짜뉴스, 왜곡보도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돼 소송이 늘어나고 배상금액이 커지면 가짜뉴스와 왜곡보도가 사라지고, 허위·조작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이뤄질 것이라는 논리다. 기사의 진실성, 가짜뉴스의 폐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와 같은 것들은 광범위하고 복잡한 주제다. 가짜 뉴스라는 말 자체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여권이 생각하는 가짜 뉴스와 야권이 생각하는 가짜 뉴스, 조국이 생각하는 가짜 뉴스와 한동훈이 생각하는 가짜 뉴스가 다르다. 세월호 가짜 뉴스, 조국 관련 가짜 뉴스, 대선 후보들과 관련한 가짜 뉴스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정부 들어 강행 처리됐던 법안 중 많은 것들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언론중재법이 좋은 의도에서 제안됐지만, 결과는 의도와 다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가짜뉴스가 큰 문제”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공격했다. ‘소송 공화국’인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보장된 나라다. 소송을 늘리고 배상 금액을 높인다고 가짜뉴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법안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제도화한 것인데, 여권은 이런 과정을 자주 생략한다. 조정과 타협을 포기하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법안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고 밀어붙인 것들이다. 이쯤 되면 개혁 법안의 나쁜 결과와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 한두 번은 실수라지만, 반복적이면 구조적인 문제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문재인정부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안고수비(眼高手卑)’를 꼽았다. 눈은 높은 곳에 있고 손은 아래쪽에 있다는 말, 뜻은 크고 높은데 이런 뜻을 이룰 재주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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