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이번에도 불효자는 ‘옵’니다?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이번에도 불효자는 ‘옵’니다?

입력 2021-08-31 04:20

작년 추석 심금 울렸던 귀성
자제 읍소 올해는 기대 난망

굵고 짧게 끝낼 수 있다는 믿음
1년 새 사라지고 피로만 쌓여

코로나전쟁은 지구전·국제전
시민에만 기대지 말고 과학적
설명, 비전 포함된 대책 내놔야

8월 무더위가 예상외로 일찍 꺾이면서 추석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한다. 31일부터 추석 연휴 KTX 승차권 예매가 시작된다. 올 추석엔 기필코 고향, 친가·친정과 시댁·처가를 찾아야 할지 고민도 시작이다. 작년 이맘때는 어르신들이 먼저 나서 자식의 부담을 덜었다. 충남 청양 거리에 집콕이 효도요 귀성은 불효라는 의미의 “불효자는 ‘옵’니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문구로 귀성 자제를 호소했다. “올해 말고 오래 보자꾸나”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라는 지혜를 담은 경구도 나붙었다.

올해도 이런 호소들이 다시 등장하겠지만 사회 전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1년 전엔 코로나19 전쟁에서 ‘굵고 짧은’ 전투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대구·경북 발 1차 대유행이 국지전으로 마무리됐고, 광복절 연휴 2차 대유행이 진행 중이었지만 수도권에 감염이 집중돼 적절히 고향길을 통제하면 승리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K방역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감염이 잇따르고 있다.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확산돼 수도권과 지방이 따로 없다. 주변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감염은 자기만 조심해선 피하기 어렵고 재수나 운의 문제란 회의감이 스멀스멀 퍼졌다. 1년 반 넘게 계속해온 방역 전쟁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긴장감이 현저히 줄었다.

2주 단위로 나오는 방역 대책은 매번 새로울 것이 거의 없어 불신을 키웠다. 자영업의 고삐를 좼다 풀었다 하는 외에는 개인의 방역수칙 준수와 거리두기 협조에 의존하는 게 단골 메뉴였다. 그나마도 방역 대책은 번번이 뒷북을 쳤다. 백신 도입이 늦어지고 예정된 물량 확보가 차질을 빚으면서 방역은 신뢰를 잃었다. 오후 6시 이후 음식점 이용을 접종완료자 포함 4인까지 확대하면서 부모 집 방문은 제한하는 등의 방역 세부수칙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거리두기에 이골이 난 시민들 사이엔 이 정도만 하면 감염을 피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나 홀로 비책’까지 한두 가지씩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맞는 올 추석에 다시 시민의식에만 기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어른들이 이번에도 손주 대면하기를 포기할지 미지수다. ‘불효자는 옵니다’는 읍소가 그때만큼 깊은 울림을 일으키지 않을 공산이 크다.

방역 당국이 오는 3일 추석 연휴 방역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국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1년 전 100명대이던 일일 신규 확진자수는 최근 10배로 늘어 55일 연속 네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전 국민의 55.8%가 1차 접종을 했고 접종완료자가 28.5%에 이르지만 우세종이 된 델타 변이의 확산 위험은 여전히 심각하다.

분명한 것은 1년 전처럼 시민에게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엔 방역 당국의 차례다. 구태의연하게 시민 협조만 호소하는 대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때다. 그 요체는 과학적 설명과 장기 비전이다. 연로한 부모의 안전까지 당국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백신의 실제 효과, 돌파 감염의 발생률이나 사례,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 등에 관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해 국민을 납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더불어 살기를 택한 국가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 그 불가피성이나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우리식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예측이 불투명한 것은 그대로 설명하고 방역 정책의 잘못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과학적 설명이 없는 무작정의 호소는 더 이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시민들의 인식과 호응함으로써 누적된 피로감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고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지게 만드는 대책이 필요하다. 드라이브스루 진료소를 만들고 신속 진단키트를 도입했던 기민했던 대응력을 다시 발휘하기 바란다. 선별진료소 같은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하는 팁을 제시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1년 반에 걸친 코로나19 전쟁은 이제 속도전이 아닌 지구전, 국지전이 아니라 국제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지금 필요한 건 지난 추석의 초전박살 구호가 아니라 긴 호흡의 비전과 희망을 공유하는 일이다. 방역 당국이 국민 스스로와 주변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자발적인 시민정신이 되살아날 것이다. 진부한 대책을 또 내놓는 것은 알아서 요령껏 행동하라는 신호를 시민사회에 주는 것과 같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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