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사퇴쇼’라는 괴상한 정치 드라마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사퇴쇼’라는 괴상한 정치 드라마

입력 2021-09-01 04:20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부친
부동산 투기 의혹에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데 민주당이
오히려 반대하며 비난 퍼부어

투기 의혹에 발뺌하는 자당
의원들의 태도와 비교돼 비판
확산되는 걸 막자는 이기적,
정략적 접근 아닌지

민주당은 사퇴안 신속히 처리하고
윤 의원은 자숙·성찰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사퇴 선언 이후 정치판에서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윤 의원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원직 사퇴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로 불거진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게 이유였다. 국민권익위는 그 이틀 전 국민의힘과 5개 비교섭 단체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불법 거래(투기) 의혹이 있다고 판단해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수사 의뢰했다는 13명 가운데 윤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국민의힘이 자체 조사를 거쳐 혐의가 없다고 면죄부를 줬는데도 윤 의원이 사퇴를 선언한 것은 의외의 행보였다. ‘책임지는 정치, 염치를 아는 정치’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런데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반길 줄 알았던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해 윤 의원이 사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법상 의원의 사퇴는 회기 중에는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해야 가능하다. 회기가 이어지고 있어 과반인 171석을 가진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윤 의원은 사퇴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당사자가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국회 의원 사무실에서 짐을 뺀 후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데도 민주당은 요지부동이다. 사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윤 의원에게 탈당부터 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행보를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이없고 지질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다. 윤 의원이 사퇴한다고 수사가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윤 의원이 특권을 내려놓고 일반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겠다고 했고 여당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윤 의원 관련 투기 의혹 수사를 특수본이 봐줘가며 뭉갤 리도 없지 않나.

민주당의 속내는 뻔하다. 권익위가 앞서 전수조사해 투기 의혹이 있다며 수사 의뢰한 민주당 의원들의 발뺌하는 행태와 윤 의원의 사퇴가 대비돼 자당에 비판이 쏟아질 것을 우려했을 게다. 윤 의원이 사퇴한다고 해도 다른 의원들이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특수본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실과 다른 의혹은 해명하고, 그러고 나서 수사 결과에 책임을 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자당 의원들에 대한 대응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오십보백보다. 권익위가 수사 의뢰한 12명의 의원 가운데 6명에 대해 충분히 소명이 됐다며 면죄부를 준 국민의힘이 윤 의원 사퇴를 내세워 민주당을 공격한다면 제 얼굴에 침 뱉기다.

홍준표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두고 갑론을박하면서 정쟁으로 삼고 희화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윤 의원의 사퇴를 미화해서도, 비난해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진해서 사퇴키로 한 만큼 결정을 존중해 주는 게 옳다. 민주당은 사퇴쇼의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윤 의원의 사퇴를 요란한 정쟁 거리로 비화시키고 들러리를 자초한 건 바로 민주당이다. 사퇴안을 처리하면 쇼가 아니라 곧장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윤 의원도 자숙할 필요가 있다. 책임을 지려 사퇴하겠다면서 변명을 늘어놓고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비난한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서울에 사는 부친이 79세이던 2016년 연고가 없는 세종시의 농지 3000여평을 8억여원에 매입했고 이후 인근 지역이 국가산업단지로 개발되는 바람에 해당 농지 가격이 단기간에 2배 이상 올랐다. 윤 의원은 매입 당시 세종시에 위치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간부로 근무했었다. KDI는 국가산업단지 예비타당성 조사를 담당하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부친의 농지 매입 과정에 윤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게 결코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발끈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니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권익위 조사 결과에 대해 “야당 의원의 평판을 흠집 내려는 의도” “끼워 맞추기 조사” “우스꽝스러운 조사”라고 비난한 것도 부적절했다.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윤 의원의 사퇴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윤 의원도 자신이 밝혔듯 ‘자숙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 소모적인 공방 속에 여야 의원들의 투기 의혹이 정쟁의 땔감이 되고 수사마저 흐지부지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재미로 보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막장이 펼쳐진다면, 생각만해도 불쾌하고 암담하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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