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백석동천’ 19세기 경화세족 홍우길 소유였다

국민일보

부암동 ‘백석동천’ 19세기 경화세족 홍우길 소유였다

문화재청, 별서정원 정보 재확인
담양 소쇄원 유래도 새롭게 규명
거창 수승대 본래 이름은 수송대

입력 2021-09-03 04:04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석동천의 연못. 백석동천은 북악산 북쪽 기슭에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연못 외에 사랑채 안채 등의 건물지도 남아있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석동천은 대대로 서울에 살며 벼슬을 한 경화세족 출신 애사 홍우길(1809~1890)이 19세기에 보유했던 곳임이 밝혀졌다. 백석실 백석곡 백사실로도 불린 백석동천은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아 여러 설이 난립했다.

문화재청은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부실 고증 논란 이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별서정원의 역사성을 검토해 백석동천과 소쇄원 등 11곳의 유래 및 소유자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별서는 교외에 따로 지은 집으로, 성락원은 실존하지 않은 인물이 소유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논란이 됐다. 문화재청은 성락원의 명승 지정을 해제한 뒤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재지정했다.

이번 조사에서 유래가 새롭게 규명된 곳으로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이 있다.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 유배 이후 낙향해 은둔하며 조성한 곳으로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알려졌으나 문헌 검토 결과, 담양 출신인 면앙정 송순(1493∼1583)이 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 거창 수승대는 퇴계 이황이 지은 시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를 바탕으로 작명했다고 알려졌으나 본래 이름은 수송대(愁送臺)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송대에는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 사신이 송별할 때마다 근심을 이기지 못했다는 설과 뛰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이 전한다.

전남 담양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김성원이 정자를 짓고 임억령이 식영(息影)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송강 정철(1536~1593)이 ‘성산별곡’ ‘식영정 20영’ 등 한시와 가사, 단가 등을 남겨 송강문학의 산실로 불린다.

경북 예천 선몽대와 구미 채미정은 정원을 만든 사람이 확인됐다. 선몽대 설립자는 우암 이열도(1538~1591)가 아니라 그의 부친인 이굉(1515~1573)이며,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진 채미정은 1768년 선산부사 민백종(1712~1781)이 지역 유림과 뜻을 모아 건립했다.

전남 순천 초연정 원림과 경북 예천 초간정 원림은 건물 중수나 중건 사실이 확인됐다. 초연정 원림은 청류헌 조진충(1777~1837)이 1836년 초가로 지은 뒤 그의 아들 만회 조재호(1808~1882)가 1864년 기와지붕으로 중건했다. 초간정 원림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됐고 죽소 권별이 1626년 중수한 건물도 불에 탔으나 후손 권봉의가 1741년 현재 자리에 중수했다.

문화재청은 ‘성북동 별서’와 관련해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나오는 ‘육교시사(六橋詩社)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으며’라는 구절은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삭제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명승 별서정원의 고시문과 국가문화유산포털 내용을 수정하고 수승대는 수송대로 명칭을 변경하기 위해 3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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