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비친 차별금지법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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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비친 차별금지법의 허상

평등으로 포장해 공유 ‘기준’ 바꾼다고 차별이 사라질까?
“동성애를 반대하지 동성애자들을 내몰자는 게 아니다”

입력 2021-09-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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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일에 하나되고 있다. 타이틀로만 보면 교회가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에 반대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속 사정을 깊이 알지 못하면 교회가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평등법 혹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분들과 지지자들은 교회가 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하는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서 반대하는 이들을 혐오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 목적은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문자적으로 보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할 것 같은 법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왜 이처럼 혐오세력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이를 반대하는 것일까?

한국교회는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와 평등사회를 위해 앞장서 왔다. 노비 제도, 조혼, 축첩 철폐에 앞장섰고, 6.25 한국전쟁 상황과 그 후에 피난민과 고아를 돌보는데 헌신하였고, 절제운동과 여성인권 보장을 위해 기여하였다. 일부 교계 목회자와 학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므로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한국교회가 이 법을 제지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 참여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평소 사회적인 이슈에 대하여는 중립적이거나 무관심하였던 교회들마저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일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반대입장을 가진 한국교회 대다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과연 ‘혐오’를 마음에 품고 있어서 그렇게 반대하는 것일까?

올바른 사회참여… 속속 합류

몇몇 활동가들의 거짓된 정보와 선동에 의해서 한국교회가 속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차별금지법의 허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차별이란 의식적이고 내면적인 언어로서 객관적인 자료나 증거로 차별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별이 진정 구제받아야 할 차별이 되기 위해서는 명백하게 증명 가능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만일 객관적인 자료나 증거로 차별을 증명할 수 있다면 현재 법 체계로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차별이라는 것은 딱히 증거로 제시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한 사회에서 상식과 윤리 그리고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에서 벗어난 소수가 그 기준에 합당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시선이나 반대 의견들에 의해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

보편적 윤리기준에 어긋나

인간에게는 누구나 보편적 도덕 윤리 의식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공유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와 경험으로 증명되고 확인될 수 있는 것들이다. 교육이란 이러한 보편적 윤리에 합당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며 이러한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그러한 마음의 고통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소수가 다수에 의해 지금 차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급기야 그 보편적 윤리 기준을 바꾸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면 다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벗어날 수 있음에도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 다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는 분명히 정통성있는 사회의 기준을 바꾸어 다수자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이다.

한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 어느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하였다. 중학교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한 이후 친구들에 의해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기자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 속히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하였다. 청소년 시절은 다양한 이유로 따돌림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친구를 집단으로 차별하는 이유가 다양하다. 그렇다면 동성애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친구를 차별하는 것은 동일한 차별이므로 모두 공평하게 법적인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이유이든 친구를 차별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친구를 차별하는 청소년들을 이러한 법으로 모두 법으로 처벌할 것인가? 그렇다면 도덕과 윤리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청소년 시절에는 도덕과 윤리 의식을 교육을 통해 함양해야 하는 시기이다.

법은 도덕과 윤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없고, 담아서도 안된다. ‘법은 도덕의 최소화’이라는 법언을 무시하고 법이 도덕 윤리적 판단 영역까지 침범하려고 시도한다면, 결국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가 설 곳이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법이 도덕과 윤리 그리고 종교를 짓누르면 사회는 더욱 황폐해진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차별금지법의 허상은 ‘모두를 위한 평등’이라는 목표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데서 발견된다. 차별금지법은 국민생활의 모든 예측 불가능한 사적 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하게 만들 위험이 매우 크다. 인간 삶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평등 개념으로 차별을 규정할 때는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하는 구별까지 차별로 오해하게 된다. 정통성 있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반대하는 의견 표현을 ‘행위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해석하게 된다. 이는 헌법이 규정하는 평등개념에서 벗어나 도리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곧 양심, 종교, 표현, 학문과 예술 등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다. 우리 헌법체계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자유’와 ‘평등’은 서로 공존해야 하는데 차별금지법은 평등만을 바라보고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지 동성애자를 사회 밖으로 내몰자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의학적 부작용과 가정의 붕괴를 막자는 것이지 그들의 인권과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빼앗자는 것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차별금지법의 허상은 성별의 정의에서 비롯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을 ‘증거 기반’ 차원이 아닌 ‘사회 문화적 기반’ 차원에서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구분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은 역사와 과학에 의해 증명된 성이다. 인간의 염색체에서 여성과 남성이 아닌 제3의 염색체가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있는가? 성별의 구분은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느낌이나 성향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중심 이유중 하나가 ‘사회적 성(Social Gender)’을 합리화 합법화 하려는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 사회의 각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또 다시 모든 법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중심에는 인간 스스로 성을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무서운 이념이 숨어있다.

‘모호한 성’ 개념 법제화 시도

현행 헌법은 성별에는 남성과 여성만이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여성의 차별을 금지하고 여성의 복지와 권익을 옹호하며, 가족생활이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성별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이란 모호한 단어를 법제화함으로써 그 자체로 위헌적 요소를 포함한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이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객관적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할 법이 개인의 주관적 성향에 좌우될 위험이 있다. 그 결과, 이미 서구 사회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 자녀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면서 가정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또한 고용과 학력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기업과 학교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학위를 취득하고 더 나은 보수를 기대하며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성실과 보상의 원리를 훼손할 위험이 많으며 이로 인한 혼란은 국민 생활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인권위의 사전 의견을 들어 이 법에 반하는 기존의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을 조사 연구하여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시정하고, 심지어 입법부와 사법부로 하여금 인권위의 권고안을 존중하여 차별시정 및 예방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지나치다. 이는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타 헌법기관을 통제하게 함으로써 권력 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특정 기관의 권력을 비대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건강한 나라·미래 위한 행동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앙의 자유를 훼손할 위험 때문에 반대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의 구현’은 국민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고귀한 이상임에 틀림없지만, 차별금지법은 취지와는 달리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법을 먼저 제정한 나라들에게서 차별이 사라진 징후는 보이지 않으며 차별금지의 가장 기본인 인종차별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차별의식은 결코 이러한 법으로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차별은 다수가 공유하는 기준을 바꿈으로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전보다 더욱 성숙한 윤리 의식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을 섬겨야 할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무분별한 입법으로 초래되는 혼란에 처하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의 허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저지하는데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 할 것이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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