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라는 정부

국민일보

[이명희의 인사이트]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라는 정부

입력 2021-09-18 04:08

지난주 두 명의 기업 회장과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한 기업은 관할 부처 허가를 받아 야심차게 추진하던 사업이 지자체에 5년간 발목 잡혀 있다가 최근 감사원이 기업 손을 들어주면서 사업을 다시 추진할 동력을 얻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은 물론 금전적 손실이 1500억원을 넘는다. 동병상련일까. 자리를 같이했던 다른 기업 회장은 “(반기업 정서가 강한) 현 정부 영향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 방문 당시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유명한 발언이 새삼 생각이 났다. “우리 정치인은 사류, 관료행정은 삼류, 기업은 이류 수준이다.” ‘관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던 어느 경제 관료의 모습도 떠올랐다.

C사 회장은 지난해 말 은퇴한 뒤 추석 이후 영국으로 가서 창업할 계획이다. 절친이 그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조사받는 것”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시로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조사를 받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인이나 소상공인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요즘처럼 어려운 적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들이 문어발 확장이나 편법적인 부의 세습으로 제 배만 불리면서 규제를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을 터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큰 기업을 일구더라도 세금으로 다 뺏어가 결국 아무 소용 없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곤란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인 근로 의욕과 기업하려는 의지까지 꺾을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 초기 어느 기업을 손볼 것이라는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인간의 이기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이상적인 정치가란 민중의 본성에 따라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백성들을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정치가, 세 번째는 백성을 가르쳐 움직이려는 정치가, 네 번째는 법에 의해 통치하는 정치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힘으로 백성을 지배하는 정치가는 이미 위정자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정치의 근본은 도덕에 있는 것이지, 법에 있지 않다는 게 사마천 주장이다. 순리를 거스르고 시장에 맞서려는 정부는 실패한다는 진리를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했다.

성경에도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고 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게으른 종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종들에게 소유를 맡겼다. 각각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해 두 배를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다. 주인이 돌아와 결산할 때 이익을 남긴 자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했고, 땅에 묻어두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다.

공정사회, 평등사회를 표방한 문재인정부는 측근들의 특권과 반칙은 옹호하면서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기업가 정신을 꺾고 있다. 공정한 분배는 사라지고 표심을 노린 재정 퍼붓기만 남발하고 있다. 부동산시장과 맞서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빼앗은 지 오래다. 우리들 각자는 맡겨진 달란트대로 세상을 살아간다. 위정자는 창조질서대로,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하면 된다. 정부는 불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도록 제도와 틀을 만들어 놓고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 굳이 선수가 돼서 링 위에 올라가 시장과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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