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서 연착 중인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심사

국민일보

공정위서 연착 중인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심사

고민 길어질수록 경쟁력·고용 불안
‘한진해운 사태’ 되풀이해선 안 돼
국토부, 정책으로 공정위 도와야

입력 2021-09-25 04:02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이 지난해 11월 결정된 뒤 1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자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항공산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신속한 심사 결과가 필요하다”며 “항공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조치”라고 공정위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왜 기업결합 심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기간산업인 항공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아시아나항공이 한계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24일 “아시아나항공이 지금은 화물 사업으로 이익을 내고 있지만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며 “만약 아시아나가 흔들리게 되면 국민 세금을 더 투입해야 될 테고, 대한항공도 구조조정을 더 해야 될 거다. 국내 항공산업 자체가 위험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항공업계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며 항공기를 추가하고 조종사와 승무원 등 인력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음을 고려하면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최악의 경우 양사 M&A가 불발되고 아시아나항공이 파산한다면 한진해운 사태가 재현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는 항공·해운업 특성상 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던 네트워크를 대한항공이 아닌 동맹 내 외국 항공사들이 가져가면서 국내 항공업의 경쟁력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진해운이 2016년 말 파산하면서 105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였던 국적선사 선복량은 파산 직후 46만TEU까지 급감했다. 정부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HMM(옛 현대상선)을 지원하면서 현재 90만TEU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파산 전 수준은 회복하지 못했다.

양사의 합병 작업이 늦어질수록 근로자의 고용도 불안정해진다. 오랜 ‘버티기’ 끝에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이 더 나빠지면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아예 파산하는 경우 모든 임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통합 후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여기에 최동선 산은 기업금융실장은 지난 16일 양사 합병 관련 토론회에서 “대한항공이 통합 후 고용을 유지하지 않으면 5000억원의 위약금이 청구된다”며 “조 회장과 한진칼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이 청구되고, 조 회장은 경영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근거를 더했다.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을 국영화해 고용을 안정시키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30년 넘게 ‘반관반민’ 체제로 운영됐던 일본항공(JAL)이 민영화 후에도 사실상 ‘국민 기업’으로 운영되며 2010년 결국 파산에 이르렀던 게 일례다. 낙하산 인사와 방만 경영으로 부실해진 경영상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던 것이다. JAL은 항공기 매각, 노선 정리, 직원 30% 감축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회생했다.

결국 공정위가 장고하는 주된 이유인 ‘독점에 따른 운임인상 등 소비자 편익 저해 우려’ 해소가 관건이다. 업계에선 타 항공사와의 중복 노선에선 운임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들이 플랫폼을 통해 가격을 비교한 뒤 더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중복 노선의 운임인상 우려는 기우라 본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 산업은행이 확정한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PMI) 계획안에는 운임을 올리려면 국토교통부에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이 담기기도 했다.

다만 경쟁이 없는 ‘독점 노선’에 대해선 운임인상 제한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임상한제가 있지만 일반적인 항공권 가격이 운임 상한의 30% 수준에 불과해 인상 여지가 큰 탓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143개 국제노선 가운데 양사 통합 후 점유율이 100%인 노선은 7개, 75%가 넘는 노선은 4개였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까지 6개의 관문이 남았다. 업계에선 일본과 중국,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판단이 주요하다고 본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M&A에 보수적인 유럽과 일본, 중국에선 슬롯이나 노선권 등에 조건을 달 수도 있지만 승인은 시기의 문제라 본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해외 경쟁 당국이 승인을 내지 않고 있는 건 한국 정부의 판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윤 교수는 공정위가 판단을 서두를 수 있는 핵심 ‘키’가 국토부에 있다고 봤다. 국토부가 양사 합병 이후 어떤 시장 환경을 조성할지, 소비자는 어떻게 보호할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정책을 제시해준다면 공정위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국토부가 항공권 가격 모니터링 제도 도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합병이 승인되고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면 너무 늦는다”고 지적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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