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무관심한 사회… 아이가 책가방 쌀 때, 엄마는 퇴사 짐 싼다

국민일보

‘돌봄’ 무관심한 사회… 아이가 책가방 쌀 때, 엄마는 퇴사 짐 싼다

일·가정 챙기며 겨우 버티다
“12시 하교라니!” 결국 사표
정책 대부분 출산·영유아기 집중
가족 도움 있어야 직장 생활 유지

입력 2021-09-25 04:06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5일 본인을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라고 소개한 A씨가 “아이 낳지 마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에 올려 많은 공감을 받았다. 글의 요지는 엄마들이 정말 힘들 때는 아이가 입학할 즈음 찾아오는데, 일을 계속하면서 아이의 방과 후 돌봄까지 책임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버겁다는 것이다.

A씨는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휴직을 보장해주는 회사가 늘어났고 어린이집도 있어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낮 12시면 하교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이때 1차로 워킹맘이 직장을 많이 그만둔다”고 전했다. 오후 5~7시까지 아이를 봐주는 돌봄교실이 있지만 학교마다 돌봄교실 수업의 질에 차이가 나고 이마저도 저학년이 아니면 신청할 수조차 없다.

A씨는 “낳아 놓은 아이를 버릴 순 없으니 엄마는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라며 “아이가 아파서 하루라도 일을 쉬게 되면 회사에도 미안해지고 또 다 나을 때까지 푹 쉬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왜 재미없는 돌봄교실에 가야 해?’라며 아이가 울 때마다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며 “막 낳았을 때나 어릴 때는 어린이집에서 최대한 밀착 케어를 해주니까 그나마 버티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그게 안 된다”고 적었다.

해당 글에 워킹맘들은 “현실 그대로”라며 씁쓸해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비롯해 저출산 해결을 위한 여성 고용 정책을 여러 해 동안 표방했지만 일선에서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응들이 많다.

워킹맘은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도 여러 번 한계 상황에 놓이지만 A씨 글처럼 학부형이 되는 순간 큰 고비를 맞는다. 일과 가정, 둘 다 챙기면서 겨우 버티던 엄마들도 이때 직장을 많이 떠난다. 여기에 1년8개월째 이어지는 코로나19는 워킹맘들을 또 다른 위기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 원격 수업으로 아이들은 집에 머물고, 학원에 보내기도 어려워졌다. 감염병 영향으로 상황이 악화한 건 맞지만 그 바탕에는 워킹맘이 살기 힘든 일상의 환경이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를 보면 여성 고용률은 30대에 급락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낳고 학령기에 접어드는 시점과 맞물린다. 20대 후반 68.7%던 여성 고용률은 30~34세에 64.5%, 35~39세 구간에 58.6%까지 감소했다.

이후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란 후인 40대에 접어들면서 재취업이 조금씩 증가하다가 40대 후반에 66.0%로 회복했다.

워킹맘들은 현재의 육아 환경은 100점 만점에 50점도 안 된다고 평가한다. 지난 13일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 따르면 워킹맘이 생각하는 국내 육아 환경 점수는 43.10점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만 9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워킹맘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출산·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3.1%였다. 이들이 직장을 그만두려고 가장 고민했던 순간은 ‘출산 직후’(35.8%)였고, 코로나19 상황(34.2%)을 제외하면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가 27.7%로 뒤를 이었다. 긴급하게 아이의 돌봄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조부모·친인척이 69.3%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공적 돌봄 체계는 3.5%에 불과했다. 그간 시스템 확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봄 해결을 위해선 가족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셈이다.


정부도 학령기 아동의 돌봄 문제 해결이 가장 절실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초등돌봄 시설과 서비스의 부족으로 초등학교 전환기에 경력 단절과 돌봄 공백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영·유아기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의 질적·양적 부족이 문제였고, 초등학교 저학년은 돌봄 수요가 큰 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저출산위는 지난해 12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면서 돌봄 서비스를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 교실, 방과 후 수업 확충은 교육부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저출산위의 대안은 교육청과 지역의 도서관, 아파트, 주민센터를 활용해 지역사회가 돌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수준에 그친다.

상대적으로 대부분의 일·가정 양립 및 돌봄 정책의 초점이 출산 전후, 영·유아 양육기에 집중돼 있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그동안 정부가 꾸준히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표적인 정책은 아동·영아수당 도입,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육아휴직 이용 확대, 양육기 근로시간 단축 등이었다. 앞의 글에서 A씨가 “워킹맘이 꿈과 희망을 버리고 모든 걸 다 그만두도록 사회가 종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표현으로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많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엄마 쪽에 양육 부담이 더 쏠려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부모가 가정에서 양육·가사 분담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실제 가사노동과 돌봄에서 격차는 여전히 상당했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주중 가사·육아시간은 아내가 181.7분, 남편이 32.2분이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워킹맘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서 절반 이상(52.1%)은 ‘코로나19 상황으로 돌봄 공백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20.9%는 ‘돌봄 공백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양육하는 대상자 중 24.4%는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으로 조부모나 친인척이 자녀를 돌봤다고 했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이나 방과후교실 등을 주로 이용했다’(20.2%)는 경우는 이보다 적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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