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홍준표의 부상이 의미하는 것

국민일보

[여의춘추] 홍준표의 부상이 의미하는 것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1-09-24 04:08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갑자기 떴다. 한국갤럽 기준, 8월 첫째주까지 2%에 불과했던 홍 의원의 대선 후보 선호도는 이달 들어 6%로 뛰었다. 대선 후보 마의 구간이라는 지지율 5%를 넘겼다. 리얼미터 등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훨씬 높은 10%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2강을 위협하는 3위 후보다.

얼마 전 홍 의원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고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산토끼 전략’을 말했다. 홍 의원은 “우리 당은 그동안 50·60대, 영남을 기반으로 대선을 치렀다. 그러나 나는 지난 4년간 집토끼는 놔두고 산토끼 대책을 쭉 연구해 왔다. 20·30대가 뭘 바라는지, 뭘 갈구하는지 조사했고, 그것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니까 (내가) 뜬 거지, 갑자기 그래(그렇게) 될 수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홍준표의 갑작스러운 부상 동력은 20대, 그중에서도 20대 남성의 높은 지지율이다. 이재명과 윤석열도 20대에서는 고전하는데, 홍준표만이 그들의 마음 일부를 사로잡았다. ‘이대남’이 홍준표를 지지하는 심오한, 특별한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문화 복제·전파 현상인 ‘밈(meme)’을 이야기한다. ‘홍준표’라는 아이템을 일종의 놀이 대상으로 소비하는 현상이다.

“이런 놈은 사형시켜야 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성질나면 막말은 할 수 있지만 쌍욕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등등. 홍준표의 발언들은 감탄의 대상이 되고, 토론의 대상이 되고, 비판의 대상도 된다. 많은 별명도 붙었다. 가장 최근에 붙은 별명은 ‘조국수홍’(조국수호+홍준표)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후보 홍준표는 ‘막말 준표’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비판을 들었다. 지금은 그 막말이 적어도 일부 지지층 사이에서는 “틀린 말이 없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홍준표가 바뀐 게 아니라 20대가 홍준표를 선택한 것이다. 올드한 보수 꼰대 홍준표가 갑자기 재미있는 소비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다.

오래되고 낡은 것에서 의외의 재미와 멋을 발견하는 레트로(retro), 조악한 싸구려 복제품이라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평가받는 키치(kitsch)라는 단어가 홍준표의 재발견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한국 경제의 방향, 검찰 개혁과 같은 무거운 주제일 필요가 없다. 심오한 개혁을 말했던 사람들이 믿을 만하지 않다는 점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독고다이’ 홍준표에게서 20대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홍준표의 부상은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이번 대선의 특징을 상징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9월 첫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후보가 없거나 모름·응답거절(유보) 응답자 비율이 32%였다. 19대 대선 6개월 전 실시된 조사에서 나타난 유보 비율(23%)보다 10% 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대선이 불과 6개월 남은 시점에 지지하는 후보가 없는 사람의 비율이 3분의 1이다. 어느 때보다 악성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이번 대선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다. 기존 권위가 부정되는 해체의 시대,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는 진영 시대의 특징이다.

유력 후보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일 잘하는 후보 이미지를 구축했던 이재명에게는 가족과의 불화, 여배우와의 스캔들, 대장동 의혹이 꼬리처럼 따라붙고 있다.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강골 검사 이미지의 윤석열 역시 가족 스캔들과 조폭 검사,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중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존경받는 대통령,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호감 도널드 트럼프와 비호감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어 비호감 트럼프가 승리했던 2016년 미국 대선처럼, 대한민국도 내년 3월 비호감 대통령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의 부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까지 높아질지 알 수 없다. 홍준표 부상의 시사점이 있다면,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조금 경쾌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천하무적’ 후보의 시대는 끝났다. 때로 실수하고 때로 사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해도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공감형 후보의 시대가 올 것 같다. 기존 질서는 해체됐는데, 해법이 없는 시대라서 그런 것 같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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