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확진자 게임, 치명률 게임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확진자 게임, 치명률 게임

입력 2021-10-01 04:20

위드 코로나 시도할 11월 초
만약 '확진 5000명' 된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확진자 기준의 판세와 달리
치명률 기준 코로나 국면은
바이러스 위력을 훌륭하게
제어해가는 양상을 보인다

'하루 몇 명' 확진자 숫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인 체계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엄중한 상황에 어울리진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처럼 코로나 사태를 인간과 바이러스의 게임이라 가정해보자. 우리는 지금 그 게임에서 지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세를 방역이 따라잡지 못한다. 보건 당국 브리핑을 토대로 게임의 판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규 확진자가 하루 3000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역대 최고치를 열 번 갈아치웠다. 이 숫자가 네 자릿수로 올라선 지 석 달이 됐다. 9월 28일에는 수도권에서 2190명이 확진돼 전체의 77%를 차지했다. 여기에 추석 영향이 반영되면서 지방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하루 1000명 이상 확진자가 이어질 때 적용하는 거리두기 4단계는 7월 12일 시행 이후 한 번도 낮아지지 않았다. 최고 강도 거리두기의 최장 유지 기록이 연일 경신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이 얼마나 심각한지, 방역은 얼마나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 사람들의 일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위의 글에서 보듯이 전부 신규 확진자 수에 맞춰져 있다. ‘하루 몇 명’ 하는 숫자가 인간과 바이러스의 승패를 결정하도록 설정돼 있으니, 이 게임에 이름을 붙인다면 ‘확진자 게임’이라 해야 할 듯하다.

우리는 확진자 게임에서 지난겨울부터 줄곧 바이러스에 져왔다. 거리두기는 작년 여름 2차 유행을 하루 확진자 최고 441명에 지속기간 한 달로 막아냈는데, 3차 유행(작년 11월부터)은 최고 1237명에 두 달, 4차 유행(올해 7월부터)은 최고 3270명에 석 달째 지속을 허용했다. 3차 유행을 두 달 만에 끝냈다고 볼 수도 없다. 3차와 4차 사이 진정국면의 하루 확진자가 2차의 정점보다 훨씬 많았다. 올해 들어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뒤에도 완패를 거듭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게임의 설정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판세가 그려진다. 감염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뜻하는 ‘치명률 게임’을 한 번 해보자.

‘지난 8월 코로나 치명률은 0.35%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작년 3월(2.87%)과 12월(2.7%) 정점을 찍은 뒤 올해 들어 급격히 감소해왔다. 2월 1.27%, 3·4월 0.6%에 이어 6월 이후 계속 0.3%대를 기록하는 중이다. 작년 12월과 비교하면 올해 8월의 치명률은 9분의 1로 급감했다. 신규 확진자는 두 배 이상 많아졌는데도(작년 12월 511~1237명 → 올해 8월 1215~2219명) 치명률은 드라마틱하게 줄었다. 감염자 병세가 심각해지는 중증화율은 작년 9월 5.9%로 최고치를 보였는데, 올해 8월은 2.22%였다. 하루 확진자가 불과 38~267명이던 때보다도 3분의 1로 낮아졌다.’

이렇게 치명률 게임에선 우리가 바이러스를 크게 이기고 있다. 코로나19로 중환자나 사망자가 나올 확률은 독감과 거의 비슷해졌다. 그리 되기 시작한 지도 제법 됐다. 치명률이 0.6%로 뚝 떨어진 3월, 0.3%대로 낮아진 6월이 아마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확진자 대신 치명률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면 이 시기에 좀 더 유연하게 방역과 일상의 근본적 재편을 시도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살려 달라”는 자영업자의 절규에 좀 더 친절히 답했을지도, 지금 숱하게 벌어지는 사회적 파산과 죽음을 좀 더 일찍 막아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뇌리에 각인된 코로나 공포는 걸리면 죽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1차 유행기에 목격한 많은 이들의 허망한 죽음이 이를 증폭시켰다. 치료제가 없고 마스크 외에는 안전장치도 없어서 어떻게든 감염되지 않은 것이 중요했기에 ‘몇 명이나 걸렸는지’ 보여주는 확진자 수에 집착하게 됐다. 당연히 중요한 문제였고, 우리는 작년에 거리두기로 그것을 꽤 잘해냈다. 하지만 의료 자원과 치료 노하우가 확충되고 백신이 보급된 뒤에도 공포와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확진자 수가 모든 의사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이기는 게임을 애써 외면하고 지는 게임에 매몰돼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됐다.

확진자 게임과 치명률 게임을 달리 부르면 ‘K방역’과 ‘위드 코로나’가 될 것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전환을 조심스레 시도해보려 하고 있다. 시점은 11월 초라고 한다. 만약 그때 하루 확진자가 5000명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부는 여론을 살필 테고, 우리가 이 숫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건이 될 듯하다. 치명률이 여전히 안정적이라면, “그래도 가보자”는 쪽에 손을 들고 싶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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