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범죄정보는 줄줄이 공개… “檢·警 공개기준 통일해야”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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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범죄정보는 줄줄이 공개… “檢·警 공개기준 통일해야” [이슈&탐사]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⑥ 검·경 다른 규정

입력 2021-10-05 04:02
경찰이 지난 3월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6월 경남 창녕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은 잔인한 범행 수법이 공분을 일으켰다. 의붓아버지와 친어머니가 초등학생 딸을 쇠막대기로 때리고 프라이팬으로 지지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친어머니 정신 병력까지 공개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과도한 개인정보 공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의 원칙 없는 범죄정보 공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찰이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수사 상황은 사실상 생중계됐다.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개혁 일환으로 2019년 말부터 시행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만 엄격하게 금지했다. 피의자 등 사건 관계자 인권을 보호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지킨다는 정부 방침이 경찰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줄줄 샌 강력범죄 정보

현재 수사 내용 공개와 관련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더욱이 검찰은 공인 범죄 사건 공개까지 과도하게 금지해 국민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경찰은 관행적인 수사 정보 유출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정한 범죄공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률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은 그동안 주로 강력 범죄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상황이나 사건 관련 인물의 개인 정보를 여과 없이 공개한 사례가 많았다. 국민 분노를 일으킨 강력 범죄 피의자에 대한 정보 공개는 어느 정도 허용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창녕 아동학대 사건 당시 경찰 브리핑에 대해 “경찰이 민감한 정보를 임의로 공개한 것에 대한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와 유사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무분별한 수사 정보 공개 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제나 심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경찰의 수사 정보 유출 문제는 해소되지 못했다. 지난 3월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관련 경찰 브리핑에서도 피의사실 유출 문제가 나타났다. 당시 ‘구미 경찰서에 따르면 아동의 친모인 석모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 반응이 나왔다’는 등 경찰 수사 상황이 사실상 생중계된 언론 보도가 쏟아진 탓이다. 석씨와 피해 아동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유출됐다.

한창 수사 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 진술이나 증거 내용도 공개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4월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를 설명하면서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아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온 피의자 김태현의 진술을 공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월 “LH직원의 자택 압수수색에서 토지개발 관련 지도를 압수했다”며 구체적인 증거 내용을 직접 공개했다.

“검찰은 입 닫았는데…”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여전히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비밀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법령에 따라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의사실 등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문제는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 그 범위나 구체적 내용을 검토, 제한할 수 있는 별도 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면서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아울러 피의사실의 예외적 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법무부 훈령에 불과하다. 검찰과 다른 행정조직에 속한 경찰은 경찰청 훈령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또 검찰은 공보담당자의 자격 요건을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으로 제한하는 반면 경찰은 정확한 사건 공보를 위해 수사 부서의 장이 공보를 전담하게 돼 있다. 검찰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면서 서울중앙지검의 정기 구두 브리핑(티타임)을 폐지했으나 경찰은 정기적으로 서울경찰청장 등이 주재하는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사건 공개 방식이 상반된 부분이 있는 데다 검경의 공개 기준 자체가 사안에 따라 제각각이다. 검찰과 경찰 모두 수사 내용을 공개할 때 ‘공개할 수 있다’는 식의 재량 규정이 적용된다.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선택적 사건 공개가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특히 공인이 연루된 범죄 사건의 경우에도 공개 여부는 검경이 사실상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경찰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진 만큼 경찰의 피의사실 유출 문제에 관한 감시가 더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늘어났고, 검찰 수사는 6대 중요 범죄 등으로 제한됐다. 경찰 관계자는 검경의 서로 다른 규정에 관해 “경찰은 현재의 규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며 “규칙이 특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입은 막고 경찰의 입은 열게 하는 것은 인권 보호라는 본래 (형사사건 공개금지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검찰이 수사하는 6대 중요 범죄는 국민 알권리가 우선되는 사항”이라며 “반면 경찰이 다루는 일반 범죄 대부분은 피의자 등의 인권을 더 보호해야 하는 사건들”이라고 설명했다.

검경 공통 기준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검찰과 경찰 각 수사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사건 공개 기준을 자체 규정이 아닌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범죄정보 공개 규정과 관련해 “법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각 수사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사건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인권 침해 요소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말했다.

특히 피의자 등 사건 관계자 인권이나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인 범죄에 대해서는 국민 알권리를 우선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검경이 공통된 (범죄공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인 범죄의 경우엔 극도의 사생활 침해나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되는 사안이 아니라면 일반 국민이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인 범죄에 대한 알권리는 판례를 통해 이미 근거가 뒷받침된 권리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 사건 판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씨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과정에서 자신이 돈을 받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던 노씨는 2심에서 패소했고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의) 지위, 피의사실 내용과 중대성, 국민의 관심 정도 등에 비춰 보면, 개인적 명예와 인격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국민 알권리에 비해 더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인에 대한 청탁이 있었는지 등에 관한 것으로서 공공성 있는 내용”이라고 판시했다. 공인 연루 사건에 대해선 국민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적 인물 사건에 대해선 관련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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