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최재형의 호된 대권수업

국민일보

[한마당] 최재형의 호된 대권수업

손병호 논설위원

입력 2021-10-09 04:10

원희룡 전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가나다 순)이 8일 국민의힘 2차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포함될지가 관심이었는데 결국 탈락했다. 그는 한때 윤 전 총장을 대체할 만한 후보로 부상했었고, 여론조사 2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저조한 성적으로 대선 레이스를 마치게 됐다. 정치에 뛰어드는 바람에 감사원의 중립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더해 컷오프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만약 대권 꿈을 접고 원장직에 계속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 그의 몸값은 더 높아져 있지 않았을까.

최 전 원장은 아무런 준비 없이 대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실패했다.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이 없었고, 정치적 감각도 부족했다. 유권자와의 스킨십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몸에 전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지금까지 버텨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본인 탓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대망을 품도록 헛바람을 넣은 사람들의 잘못이 작지 않다.

최 전 원장이 비록 차기 대권 꿈은 접게 됐으나 정치권에 뛰어들면서 알려진 그의 삶은 여러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고교 때 몸이 불편한 친구를 등에 업고 학교를 다닌 일화는 마치 어린 성자(聖者)를 연상케 했다. 최 전 원장 부부가 자녀 둘을 입양해 잘 키웠다는 얘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에 네 아이를 키운 점도 남다르게 보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부는 평소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다.

최 전 원장이 정치로는 이번에 꽃을 피우지 못했으나 옳다고 믿는 일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성품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면 국민한테 봉사할 기회가 또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에선 벌써부터 내년 3월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투입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렇게 금방 선거판에 다시 휩쓸리기보다는 최재형다움을 되찾는 일이 우선 아닐까. 귀감이 됐던 삶만큼이나 남다른 최재형 시즌2를 보여주기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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