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아래 새옷 갈아 입은 들… 5만년 전 ‘펀치볼’ 속으로…

국민일보

발 아래 새옷 갈아 입은 들… 5만년 전 ‘펀치볼’ 속으로…

운석충돌 분지·황금 들판 느티나무·옥전고분… 경남 합천의 이색 풍경

입력 2021-10-13 20:32
경남 합천군 대암산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 비행에 나선 조종자와 체험자가 파란 가을 하늘 속으로 미끄러지듯 활공하고 있다. 아래에는 거대한 화채 그릇 같은 적중·초계 분지가 추수철을 맞아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경남 합천은 가을철 여행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여행지다. 단풍은 물론 억새가 물결치는 장관이 펼쳐져서다. 단풍도 억새도 덜 무르익은 이른 가을엔 벼가 누렇게 물들어가는 황금 들판이 매력적이다.

최근 새로운 곳이 부각되고 있다. 초계면과 적중면이다. 외곽을 따라 둥그렇게 산으로 둘러싸인 화채 그릇 모양의 지형이 지난해 말부터 여행객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한반도 최초로 5만년 전 운석 충돌로 만들어진 분지로 확인됐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2010년 발표된 중국의 랴오닝성 슈엔 운석충돌구 이후 2번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는 지난해 12월 약 7㎞ 직경의 적중·초계분지에 대해 현장조사와 분석을 실시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운석이 충돌할 때는 강한 충격파가 일어나 거대한 웅덩이를 형성한다. 이때 발생한 충격파의 영향으로 기존 암석과 광물 속에 충격변성에 의한 흔적이 남는다. 셰일암석에 충격파로 형성된 원뿔형 암석 구조가 거시적 증거로 제시됐다. 연구원은 운석충돌구 직경을 4㎞로 가정하면 약 200m 직경의 운석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분지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대암산 정상(591m)이다. 초계면 원당마을이나 반대편 대양면 장지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차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용된다. 주변에 산불감시초소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다.

이곳에 서면 풍광은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 동서 8㎞, 남북 5㎞의 타원형 분지가 해발 200~600m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펀치볼’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차별침식이 아닌 운석 충돌로 생겨난 점이 다르다. 슈엔 충돌구가 지름 1.5㎞인 점을 감안하면 초계분지의 규모가 훨씬 크다. 내부는 드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조각보 같은 논이 추수기를 맞아 황금물결을 이룬다. 뭉게뭉게 하얀 구름이 피어 오른 파란 하늘 사이로 거침없이 몸을 내맡기는 패러글라이딩 마니아들이 창공을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처럼 두둥실 떠간다.

밤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은하수를 비롯해 밤하늘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밝은 빛을 내며 빠르게 떨어지는 유성이 5만년 전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방증해주는 듯하다.

야로면 구정리 논 한가운데 우뚝 선 느티나무.

합천에서 인기를 끄는 또 다른 황금 들판은 야로면 구정리에 있다. 마을수호신처럼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사방으로 난 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둘레 6m로 깊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을 키워내며 넉넉한 그늘을 내준다. 유치원생에겐 소풍 장소로, 할머니들에겐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 농부들에겐 하루 일을 마치고 이웃의 소식을 전하는 토론의 장으로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전체 면적의 90%가 산지인 합천에는 비탈진 산자락마다 다랑논이 발달해 있다. 합천호를 끼고 있는 대병면 일대가 눈에 띈다. 금성산과 악견산, 허굴산 주변의 다랑논은 호수 쪽으로 층층이 흐르는 황금물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가로지르는 창녕~함양 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풍광이 많이 망가져 아쉽다.

쌍책면에 자연마을인 ‘구슬 밭’ 옥전(玉田)이 있다. 이곳 야트막한 구릉에 옥전고분군이 봉긋봉긋 자리해 있다. 고분은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지름 20∼30m의 대형 고분 27기가 발굴·복원돼 있다. 4세기에서 6세기 전반 합천의 여러 가야왕국 중 다라국(多羅國) 지배 집단의 묘역으로 추정한다. 3000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졌다.

소나무 사이 봉긋한 옥전고분군 너머 합천박물관.

바로 앞 합천박물관에는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금동보관부터 은제 관, 금동관모, 비늘갑옷 등이다. 대표 유물은 용과 봉황이 새겨진 둥근 칼머리의 큰 칼 ‘금장용봉문환두대도’다. 박물관 입구 연못 한가운데에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여행메모
원당리에서 임도 따라 대암산 정상에
합천박물관 둘러보고 옥전고분군 산책

조선 인조 때 세워진 초계향교의 출입문 풍화루.

경남 합천 대암산을 차로 오르려면 '초계면 원당리 산54-8' 또는 '대양면 무곡리 산49'를 찾아가면 된다. 짧은 시간에 가려면 원당리가, 한적하게 오르려면 무곡리가 좋다. 원당리 쪽에 패러글라이딩 착륙장이 있어 차량통행이 많다.

대암산에는 정상부를 둘러 돌로 쌓은 전(傳) 초팔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 길이는 대략 400m이고 폭은 150여m이며 남쪽은 능선을 따라 돌출해 있다고 하나 찾기가 쉽지 않다. 분지 한쪽에 자리잡은 초계향교는 조선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1800년대 초반 현재 위치로 옮겼다.

합천박물관은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나들목에서 나와 907번 지방도를 타고 쌍책면으로 가면 된다. 박물관에 닿기 전 옥전고분군 이정표가 있다. 박물관에 주차 후 산책로를 따라 고분군으로 가는 게 더 좋다. 박물관은 오전 9시~오후 6시 개관하며 오후 5시에 입장을 마감한다. 11월부터 동절기에는 마감이 1시간 앞당겨진다. 무료다. 황금 들판 가운데 느티나무는 구정리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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