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한몸이던 당신은 대한민국을 사랑한 ‘작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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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한몸이던 당신은 대한민국을 사랑한 ‘작은 예수’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조지 오글 지음/신앙과지성사

입력 2021-11-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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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합감리교회 선교사였던 조지 오글 목사가 1974년 12월 유신독재 정부 기관원들에 의해 강제 출국을 당하던 김포공항 비행기 트랩에서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를 외치고 있다. 국민일보DB

“오명걸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살려고 애썼다. 그의 도시락에는 항상 김치와 깍두기가 들어 있었다. (중략) 그와 한국인 동료들은 소위 ‘공목’(工牧)을 실천했다. 공장 목사들은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동참했다. 오명걸 목사는 동역하는 목사들에게 ‘스스로 노동자가 돼라. 노동 사회에도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배우라’고 다그쳤다. 노동자들을 선교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목사들에게 이런 숙제도 냈다. ‘오늘 찾은 예수를 적어 내시오. 당신 주변에서 예수를 찾으시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세계선교국,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이 공동으로 출간한 책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신앙과지성사) 가운데 송병구 색동감리교회 목사가 회고한 글이다. 조지 오글(1923~2020·오명걸) 목사 별세 1주기를 맞이해 세상에 나온 추모 문집이다.

오글 목사는 1954년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20년간 한국 도시산업선교의 선구자로 사역했다. 서울대 노동관계 전임강사로도 강의하던 중 군사재판에서 부당하게 사형 선고를 받은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8명의 피해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다, 1974년 유신정권에 의해 강제 출국당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회복을 호소한 그는 2020년 6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민주주의 발전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인천산선의 2대 총무를 역임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모’ 조화순 목사는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오글 목사님”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오글 목사는 그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겪는 모든 사람을 작은 예수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던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나아가 “남자 목사였으나 가부장적 위선을 깨뜨리려고 늘 노력했으며, 여성을 존중하고 같은 예수의 제자로 동행했다. 우리 시대를 거스른 따뜻한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이철 기감 감독회장은 ‘오명걸, 복음의 감동’이란 제목의 글을, 정희수 UMC 위스콘신연회 감독은 ‘한국을 너무 사랑하셨던 거목 선배님’이란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유신독재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과 그 배후 조직으로 점찍어 판결 직후 곧바로 사형을 집행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 가족들을 남들처럼 외면하지 못한 대가로 오글 목사는 74년 12월 김포공항에서 강제 출국을 당한다. 오글 목사는 자신의 가족 얼굴도 못 본 채 홀로 대한항공 비행기 트랩에 오르며 주먹을 높이 들고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

추모의 글에 더해 오글 목사의 영문 소설을 2003년 번역 출간한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How Long, O Lord)도 책에 수록돼 있다. 오글 목사가 한반도 식민 지배와 분단의 희생물이 된 아버지와 아들, 독재정권 아래서 노예처럼 살아간 노동자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 러시아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고난을 섬세한 필치로 다룬 4개의 이야기다. 20세기 한반도의 역사적 아픔에 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다.

오명걸의 부인으로 한국 이름 오선화인 도로시 오글 사모는 “남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자신이 쓴 이 책을 읽어주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곤 했다”고 회고했다. 오글 사모는 남편을 기억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한국에서의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돌아봤다.

“대한민국은 소설과 같은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대한민국의 재건에서부터,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주의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한국 국민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세계 각지에 2만2000명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읽었으면 하는 선교사 이야기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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