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시골 부부 그들 이야기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시골 부부 그들 이야기

박두호 전 언론인

입력 2021-11-27 04:03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식당을 하는 부부가 있다. 남편은 60대 초반, 아내는 40대 후반이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 아내가 우리 부부 테이블로 왔다. 그녀는 남편 흉보고 나는 그걸 편들어 주는 게 평소 우리 대화의 즐거움이다. “며칠 전 밥 먹다가 저 사람한테 ‘죽지만 말아’라고 했어요.” 오늘의 시작은 의외였다. 나가 놀든 어디 가서 노름을 하든 살아만 있으라는 말이다. 남편 없는 여자라고 이놈 저놈 집적대는 꼴로 살고 싶지 않으니 제발 늙을 때까지 죽지 말라고 했단다.

반전은 바로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죽지 말라 얘기하려 ‘자기야’ 하고 불렀을 때 밥을 먹으며 뭐 또 잘못한 게 있나 쫄아서 쳐다보는 표정이 너무 웃겼어요.” 자기의 완전한 승리였다는 거다. 남편은 과거 동네에서 경찰이나 행정기관에 드러나지 않거나 그들이 하지 못하는 그늘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정리해주는 일종의 보안관 같은 역할을 했다. 그 뒷감당 하느라 아내가 고생도 많이 했다. 지금은 아내가 몸이 불편해지자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자기야 부르면 또 뭔데 하고 쫄도록 만들었다.

하도리 시골 동네의 50대 후반 남편은 술도 먹지 않는 사람인데 낮에 술이 취해 우리 집에 왔다. 집 마당에 아내가 블루베리 두 그루를 심었는데 그걸 옮겼더니 왜 그리 옮겼냐며 화를 냈다는 거다. 맨정신에 집에 들어가지 못해 나에게 하소연도 하고 한잔 더한 뒤 술김에 들어가려고 온 거다. 도움이 되려나 하고 내가 같이 집에 가 너스레로 밥 좀 달라며 화해시키려 했다. 나는 그의 아내가 내준 귀한 성게알을 아까운 듯 일부러 찍어 먹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그의 아내가 내 밥그릇에 푹 부어 비벼줬지만 여전히 도끼눈은 풀지 않았다. 그 후 동네에는 “형님이 가도 소용없었다면서요”라고 소문이 났다. 타일·철근·목공 분야 협력업체 사장의 경우 부부가 하루 24시간 붙어 함께 일하는데 어떻게 싸움을 하지 않고 지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나도 정말 궁금하다.

60대 후반 남편은 콜라텍에 나간다. 머리숱은 적지만 키가 훤칠하고 늘씬한 스타일이다. 특히 오랜 경력으로 춤이 능숙해 콜라텍에서 인기가 있다. 그래도 늙었다. 그에겐 늘 기다리는 파트너가 있다. 동네 여편네가 그의 아내에게 “남편이 콜라텍에 가면 고정 파트너가 항상 기다리고 있대요”라고 일렀다. 아내는 “내 신랑 좋아해줄 정도로 여전히 인기 있으면 됐지 뭐”라며 외면하더란다. 그 아내는 어릴 적 한 동네에서 함께 뛰어놀며 자란 사이다.

제주도 시골에선 남편 출근시키고 애들 학교 보낸 뒤 집에서 손톱 정리하는 전업주부는 내가 아는 한 한 명도 없다. 두 번째 등장한 아내는 해녀이면서 큰 비닐하우스에 깻잎을 재배한다. 콜라텍에 나가는 남편의 아내는 상군(上軍) 해녀다. 손주들에게 세뱃돈을 100만원씩 준다. 남편이 통장에 잔고가 얼마냐 물었다 “알아서 뭐하게”라고 핀잔만 듣는다. 그게 얼마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그래서 두렵다.

박두호 전 언론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