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친구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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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친구의 얼굴

에베소서 4장 32절

입력 2021-11-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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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안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관계를 떠난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관계와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발명가인 인물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입니다.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걸린 최후의 만찬(1498년)은 불후의 명화 중 하나죠. 1495년에 그리기 시작해 1498년에 완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가까이 지내던 친구 화가와 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도저히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가슴에 분노가 타올랐죠.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복수를 결심하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배신자 가롯 유다의 얼굴을 그 친구의 얼굴로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다빈치가 작품에 그리스도를 그리려 하자 도저히 그리스도의 형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좌절감에 사로잡혀 방황하다 결국 붓을 던져 버렸죠. 뒤늦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친구의 얼굴을 가롯 유다의 얼굴로 그려 넣은 자신의 복수가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친구에 대한 복수심이 타오르는 한 도저히 그리스도의 형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빈치는 주님 앞에서 친구를 용서하지 못했던 자신의 허물을 회개했습니다. 그런 후 유다의 얼굴에서 친구의 얼굴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주님의 형상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예수님의 얼굴은 그렇게 그려졌습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용서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한 종의 비유가 바로 용서의 가치에 관해 말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무려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100데나리온(1달란트=60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에 빚진 자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대속의 은총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6).

용서는 하나님만 할 수 있습니다. 신의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의로우신 존재여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 자체가 놀라운 은총의 사건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는 남을 용서하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나를 용서하는 행위입니다. 용서의 은총 안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영복 목사(서울 갈릴리교회)

◇갈릴리교회는 예수님의 3대 운동을 따라 생명과 사람, 사랑운동을 전개하는 예수 공동체다. 김영복 목사는 연세대 교목을 지냈고 현재 웨이크사이버신학원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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