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숫자의 민낯

국민일보

[가리사니] 숫자의 민낯

심희정 경제부 기자

입력 2021-11-29 04:05

지난 16일 오전 9시30분쯤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소란이 일었다. 올해 초과 세수가 얼마인지를 놓고 기재부 조세분석과장과 기자들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기재부가 ‘월간 재정동향’을 브리핑하기 30분쯤 전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라디오에서 “초과 세수는 19조원”이라고 말했는데, 기재부 과장이 “10조원대”라고만 답변하면서다. “당정의 인식 차이가 왜 이렇게 큰가” “세수 추이를 보면 10조원이 훨씬 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는 “10조원대”를 고집했다.

브리핑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30분이 돼서야 기재부는 ‘초과 세수는 19조원으로 전망된다’는 추가 자료를 냈다. 기재부는 실무자 선에서 공식 발표 전의 초과 세수 규모를 확정 지어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회에서 언급한 ‘10조원대’를 반복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미 초과 세수를 19조원대로 추산해 놓고선 기자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기재부 측은 숫자를 정정하면서도 “19조원도 10조원대”라며 멋쩍게 말했다.

기재부가 종합부동산세 브리핑을 하던 지난 22일의 분위기는 조금 더 격앙돼 있었다. 기재부는 다주택자가 아닌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상승 폭은 크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시가 25억원 이하 1가구1주택자의 평균 세액은 50만원 수준이라고도 강조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가 20억원 이하는 평균 세액이 27만원이라고까지 덧붙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주택자의 평균 세액에 대해선 “따로 계산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숫자는 명료한데, 해석은 늘 제각각이다. 원래의 숫자들은 잘 보이지 않고, 양념이 잔뜩 쳐진 숫자와 말들이 어지럽게 떠다닌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의도는 더 명확해진다. 당장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며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강조하겠다는 의지. 1주일 새 그 고집스러운 모습을 연달아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여러 겹의 장막이 쳐진 숫자의 민낯을 찾고, 해석에 현혹되지 말자는 것이다.

숫자의 민낯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숫자로 대표되는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종부세 기사를 본 한 독자는 메일을 보내 답답함을 토로했다. “잠실 장미아파트 56평 1채 보유한 40대 남성 실거주자입니다. 1주택자 종부세가 대체로 50만원이라는 ‘부담 없네’라는 식의 언론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팩트를 전하려고 제보합니다. 저의 경우는 지난해 종부세가 187만원이었으나, 어제 받은 고지서는 459만원으로 상향됐습니다.” 1가구1주택자 13만2000명의 종부세를 주택 시세별로 쪼개서 낸 평균으로 ‘50만원’을 맞춘 정부의 설명이 무리한 시도였다는 게 실제 사례로 증명된 셈이다.

홍 부총리가 지난 10일 “10월 취업자 수가 코로나 발생 이전 고점이었던 지난해 2월 대비 99.9% 회복했다. 청년층은 취업자 수가 8개월 연속 증가했으며, 고용률은 45.1%로 2004년 이후 10월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언급한 데 대한 의문도 한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주변에선 다 취업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옵니까?” 통계를 뜯어보니 20, 30대 취업자 10명 중 4명은 주당 근로시간이 36시간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근로시간이 적다고 해서 나쁜 일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에 내몰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단시간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의 삶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매일 숫자 앞에서 씨름하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께 당부하고 싶다. 주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숫자로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부 담을 수 없다. 숫자로 현상을 윤색할 수도 없다. 숫자를 어떻게 매만질지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책에 반영해주기를, 그것만을 국민은 기대한다.

심희정 경제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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