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하나님 시간으로의 초대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하나님 시간으로의 초대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입력 2021-12-03 04:02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됐다. 끝의 시작이 온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때가 되면 진지해진다. 그러나 해가 바뀐다고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12월 31일에 졌던 해와 다음 날 아침에 뜨는 해는 동일한 항성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면서도 굳이 달력을 만들고, 한 해의 시작과 끝의 경계를 정한다.

물론 자연에도 밤낮과 사철이 있으니 주기적으로 끝을 맺고 새로 시작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존재들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그 주기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 정도 독립해 자신만의 시간 체계를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가 세밑과 새해를 쇠는 일은 매우 창의적인 일이고, 자연이 아닌 문화의 소산이며, 놀라운 발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시간과 분과 초를 정하고, 달과 주일을 만들고, 이 모든 것을 달력과 시계에 표시하고, 온갖 기념일들을 정해 달력에다 적는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시간 속에 새겨지게 됐다. 권력자들은 시간을 지배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달력에도 그 증거가 뚜렷이 남아 있다. 10월 이후 달의 영어 이름이 숫자 8, 9, 10과 연관되는 이유는 율리우스 시저를 기념하는 July와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는 August가 중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60년 전 어제인 1961년 12월 2일은 5·16 군사정변 후 새로운 정권이 서기를 공용연호로 사용한다고 발표한 날이다. 그전 일제 강점기 기간에는 일본 연호, 해방 직후에는 서기,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부터는 단기가 사용됐었다. 인간의 시간은 분명 인류에게 진보와 복리를 가져다주지만, 잘못 사용될 때 자연의 시간보다 무서운 시간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시간이 있다. 하나님의 시간이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에 시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된다. 이런 시간은 우리의 운명을 옥죄는 낯설고 두려운 대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고 이바지할 기회가 된다.

하나님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교회력에 따라 한 해를 사는 것이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중심으로 편성된 달력으로, 대림절 첫째 주(이번에는 11월 28일)에서 시작해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끝난다. 교회력은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의 절기를 거쳐 성령강림절, 그리고 그 이후의 평주일로 이뤄진다. 또한 교회력의 주제에 따른 성경 읽기와 예배 준비를 위한 매주의 성경 본문 목록이 있는데 이것을 성서정과라고 한다. 성서정과는 3년을 한 주기로 하여 성서 전체를 골고루 읽도록 작성됐다. 언뜻 들으면 좀 복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력은 교회의 오랜 역사를 통해 다듬어지고 검증된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인 시간 사용 지침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력이 최종적인 답은 아니다. 교회력에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체득한 다음에는, 세상의 달력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는 것이 그다음 과제일 것이다. 시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원재료이다. 자연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이나 하나님의 시간이 된다고 물리적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각각의 시간을 경험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 생각 하나만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 교회력은 하나님의 시간으로의 초대장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