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메르켈 퇴임식

국민일보

[한마당] 메르켈 퇴임식

라동철 논설위원

입력 2021-12-06 04:10

국가 최고 권력의 교체기에 스포트라이트는 새로운 권력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대 대통령들은 변변한 퇴임식도 갖지 못한 채 허겁지겁 물러나야 했다. 임기 마지막 날 대국민 고별 연설을 하고 국무위원들과 오찬 및 기념촬영을 하고는 청와대를 비워야 했다. 국민들의 존경과 감사 속에 석별의 정을 나누며 퇴장하는 퇴임식은 우리에겐 사치인 걸까. 지난 2일(현지시간) 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퇴임식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이다.

입김이 보일 정도로 쌀쌀했고, 코로나 사태 악화로 참석자가 축소됐고, 메르켈 총리가 이끌던 기독교민주연합 주도 중도우파 연정이 총선 패배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주도 연정으로 교체되는 가운데 열렸지만 분위기는 훈훈해 보였다. 메르켈의 표정에서는 지난 16년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올라프 숄츠 차기 총리 내정자 등 참석자들은 진심 어린 박수와 감사로 메르켈의 퇴임을 아쉬워하고 축하했다. 공식 퇴임일(오는 8일)에 앞서 예우를 갖춘 퇴임식을 열어주는 독일의 정치 문화가 부러웠다. 메르켈만 이런 퇴임식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다. 통일 독일 초대 총리 헬무트 콜(기민당 출신), 뒤를 이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사민당 출신)도 이런 예우를 받았다.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집권 후엔 연합과 소통을 통해 국익과 국민의 삶을 우선적으로 챙겨온 정치 문화가 이런 전통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닌지.

메르켈은 포용과 중재가 핵심인 무티(Mutti·엄마) 리더십으로 독일을 유럽의 정치·경제적 리더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선 승리를 이끈 숄츠 사민당 대표를 지난 9월 3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데려가 각국 정상에게 소개해 준 것은 무티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입만 열면 국익, 국민을 내세우면서도 정파적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고 작은 차이도 확대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우리의 후진적 정치 문화가 독일식으로 개선되는 건 헛되고 헛된 기대일까.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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