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서울사이버대 총장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 할 것"

국민일보

김수지 서울사이버대 총장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 할 것"

입력 2010-02-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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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하나님] 김수지 서울사이버대 총장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나갔다. 어려웠던 시절, 부모님은 늘 밖에서 일하셔야 했다. 나는 주로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지냈다. 하루는 동생과 함께 장터로 걸어 나갔다. 우린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나서 가 보니 교회였다. 한 여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내가 보기에도 더러웠던 여동생을 안고 뽀뽀를 해 주셨다.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다.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나중에 철들어 깨달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서울 창신동의 교회에 다녔다. 나는 학생회 부회장을 맡은 열심 있는 학생이었다. 마침 한 호주 선교사님이 주일 예배 설교자로 교회를 찾았다. 영어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맨 앞줄에 앉았다. 설교 본문은 요한복음 3장3절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 선교사님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아 유 본 어게인?"(Are you born again?)이라고 물었다. 그 질문의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한 뒤 목사님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 건가요?” 목사님은 “믿음 좋은 학생이 시험 들었다”면서 “딴 생각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당시 서울역에 있던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금요 성경공부에 찾아가 미국 여선교사에게 요한복음 3장3절의 뜻을 물었다. 그분은 내가 죄인이며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입으로 시인하라고 하셨다. 이후 나는 이 선교사님과 경건의 시간을 갖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 분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셨다, 그 분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셨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분, 나의 구원자셨다.

그해 가을 나는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을 때에 나는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이 강하게 와 닿았다. 그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는 삶’을 살 것을 결심했다. 그분과 나의 사랑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셨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여순반란사건을 겪고 간호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이대 간호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이후에는 오랜 기간동안 간호학과 교수로 가르쳤다. 그 사이 많은 좋은 일들이 있었다. 2006년부터 서울사이버대학 총장으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고 과거 정부 시절에 입각제의도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나의 정체성은 간호사다. 사람들은 내게 곧잘 물었다. “왜 간호사가 되셨어요? 차라리 의사가 되질 그랬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간호사로 부르셨다. 간호사는 돌보는 사람이다. 돌본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개념이다. 주님을 나를 돌보셨다. 그 주님의 돌보심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스천이란 누군가. 크리스천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생각과 삶이 변하고 끝내는 주위까지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할 때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나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남편 고 김인수 박사를 이야기 한다. 격동의 시기를 우리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갖고 믿음의 동지로 살아왔다. 연애시절 4년동안 2400여통의 편지를 교환할 정도로 서로를 향한 열정이 강했다. 남편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누구보다도 그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다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이 땅을 떠났다. 믿음대로 살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은 이 땅에 흔적을 남겼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매년 ‘인수와 함께 가는 모임’을 갖고 있다.

나는 2006년 6월부터 서울사이버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와서 보니 사이버 교육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 서울사이버대의 교수님들도 너무나 헌신적이다. 그들은 내가 오프라인 교육시스템에서는 보지 못한 진실된 헌신을 하고 있었다. 이 대학에서 위대한 인재가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내 나이 69세.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게 남았다. 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그 순간까지 오직 주님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 신자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과 변함없이 돌보는 사역을 할 것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 아이티에도 달려가고 싶다. 주님이 돌보셨던 그대로 사람들을 돌보고 싶다.

내가 만난 하나님, 그 분은 돌보시는 분이시다. 나를 돌보셨고,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시기를 소망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내게 성공은 예수님처럼 돌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는 날 까지 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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