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년, 어제와 오늘] 그동안 묘역에 ‘열사’ 단어도 없었다

국민일보

[4.19혁명 50년, 어제와 오늘] 그동안 묘역에 ‘열사’ 단어도 없었다

입력 2010-04-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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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김주열 열사의 흔적을 찾아서

전북 남원시 금지면 김주열 열사의 고향 마을에 위치한 묘역에는 지난 8일 4·19혁명 50주년에 맞춘 정비사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묘역에서 ‘열사’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비석엔 단지 ‘김주열지묘’라는 한자 비명만 적혀 있었고 묘역 앞 안내석의 문구 또한 ‘김주열묘’였다. 2001년 세워진 건물에도 그저 ‘기념관’ ‘추모각’이란 현판만 내걸려 ‘열사’라는 단어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김 열사가 4·19혁명의 상징으로 불려지고 있긴 하지만 이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 장학재단 설립 등이 추진됐으나 바로 무산됐다. 1년 뒤 5·16이 일어나 군사정권의 집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열사’라는 호칭을 그나마 스스럼없이 쓰게 된 때는 기껏해야 2000년대 중반부터다.

묘비석은 1994년 제작된 지금의 비석에 앞서 두 차례 더 세워졌지만 ‘열사’란 단어는 없었다. 60년 장례 이후 ‘4월의 영혼, 고 김주열군지묘’라는 목비가 세워졌고, 64년 유진오 박사가 비문을 쓴 비석에도 ‘김군주열지묘’라고만 적혔다.

80년대 들어서 지역 민주인사들이 이따금 추모 행사를 가졌지만 이마저도 정부기관에 의해 감시되는 실정이었다.

“80년대 후반이었어요. 묘역 재정비 사업비 모금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는데, 의원들이 100만원, 200만원씩 내놓겠다고 서명을 했어요. 그러나 이후 약속을 지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박영철(68)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당시 정치인들의 자세를 전하며 씁쓸해 했다.

다행히 90년대 후반부터는 남원과 경남 마산지역에서 기념사업이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4·19정신 계승, 김 열사 추모, 동서화합이라는 3가지 목표로 여러 행사를 펴고 있다. 묘비도 새로 제작 중이다. 기념사업회는 ‘열사 김주열의 묘’라고 새긴 묘비를 오는 19일 제막할 예정이다.

글·사진 남원=김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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