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의 여왕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 인생3막 이야기

국민일보

가곡의 여왕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 인생3막 이야기

입력 2011-09-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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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예술가에겐 정년이 따로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아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자리였다. 이제 막 충전이 끝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충만해보였다. ‘한국 성악계의 뮤즈’ ‘몇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귀한 음성의 소유자’ 영혼을 울리는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메조소프라노 백남옥(66). 여고시절 서울음대 주최 전국음악콩쿠르에서 전체 특상을 받았다. 1976년 서울음대 2학년 땐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성악부 1등을 차지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그녀는 이후 독일 유학 땐 베를린국립음대 오케스트라와 협연, 한국 성악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곱고 아름다운 전통 한복,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변함이 없다. 그녀의 옷엔 조선 여인의 절개와 품위가 깃들어 있다. 지난달 32년간의 경희대 교수 임기를 마치고 정년퇴임한 백씨는 15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명예롭게 퇴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면서 “인생 3막을 향해 돛을 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면.

“며느리, 어머니, 스승, 아내, 음악가 등 1인 5~6역을 하느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자 성악가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40대 후반부터 10여 년 동안 건강이 크게 나빠진 적도 있었다. 성경과 제자와 관객이 나를 살려줬다.”

-무대에 설 때 한복을 꼭 챙겨 입는다. 왜 한복인가.

“어머니가 한복을 좋아했다. 내가 20대 중반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남긴 한복은 나의 에너지원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은 연주여행을 하면서 모국의 흙을 항상 갖고 다녔다. 전쟁과 식민지를 겪은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나는 흙 대신 우리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해외에 나가고 있다. 한복의 정신이 빠진 오페라는 껍데기일 뿐이다.”

-퇴임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늘 퇴임 이후를 준비해 왔다. 나에겐 인생과 음악의 마무리가 아니라 3막의 시작이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성남아트홀에서 대규모 공연을 했고, 오는 23~25일 MBC문화방송 가곡의 밤에 출연한다. 새로운 오페라 관련 책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에 오페라 순례를 떠난다고 들었다.

“후학들에게 제대로 된 오페라 문화를 먹여줘야 한다. 최고의 오페라 싱어가 누구고. 뮌헨과 파리, 밀라노 오페라 현장을 영상으로 찍어와 세미나를 열고 싶다. 투어 멤버들이 정해졌다. 예술감독(투어리더)으로 참가한다. 리더로서 그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후학들에게 보여줄 자료를 손수 챙길 생각이다. 뮌헨, 파리, 밀라노 등 세계 3대 오페라의 본고장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을 것이다. 리골레토 카르멘 등을 볼 예정이다. 내년 1월 31일 인천공항을 떠난다. 3월이면 3막이 시작된다.”

-언제 음악과 인연을 맺었나.

“미션스쿨 이화여중과 서울예고 나왔다. 정동제일교회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아버지 백인엽 장군과 함께 살았다. 5·16군사쿠데타가 났을 때 재산을 헌납하고 부정축제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이혼한 어머니와 난 졸지에 가장이 없는 신세가 됐다. 집도 없이 셋방을 전전했다. 김학근 선생님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육신의 아버지는 떠났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천상의 목소리를 주셨다.

-역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극복했나.

“40대 중반부터 50대말까지 신경성 위장염으로 고생했다.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니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약을 물리고 성경을 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연주회도 많이 줄였다. 괴로운 문제가 생겨도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비웠더니 안정을 되찾았다.”

-제자들에게 한 마디 남기고 싶다면.

“정년 후에는 학교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진정한 개미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개미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투혼이 필요하다. 미래의 어느 날 만남의 광장에서 보따리를 풀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정진하기를 바랄 뿐이다.”

-왜 신앙을 가졌나.

“믿음이 없는 삶은 절망뿐이다. 신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질투와 유혹 앞에선 이성을 잃고 약해진다. 인간은 산 앞에 모두 나약한 존재다. 세종대왕도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나면 참고 견디며 져주라고 충고했다. 내가 참고,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면 된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다. 구순이 된 아버지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됐다. 내 자신을 거듭나게 했고 노래하게 해줬다. 내 삶의 안테나는 가정에 있다. 성실한 삶이 기본이다. 나는 앞치마가 7개나 된다. 회개하듯이 쓸고 닦는다. 그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촛불이 되고 싶다. 일본은 칼의 문화다. 미국은 총, 우리나라는 활이다. 활을 잡아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사격의 명수였다. 나는 활을 쏘고 싶다. 후학들에게 희망의 화살을 선물해주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속아주고 져주면 행복이 찾아온다. 그게 부활이다. 다른 종교엔 없다. 사람이 계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개미처럼 살아야 한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남편과 딸을 위해 쌀을 씻는다. 우유 한 잔 먹고 새소리를 듣는다. 잠시 산책을 하고 아침밥을 짓는다. 저녁엔 촛불을 켠다. 촛불 아래서 기도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용서와 관용의 마음이 절로 찾아든다.”

-시어머니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던데.

“청빈한 목회자 집안 다섯 째 아들과 결혼했다. 시어머니가 부정의 돈을 쌓지 말라고 했다. 퇴임할 때까지 명예를 지키라고 하셨다.”

-어디 교회에 출석하나.

“서울 마포 만리현교회에 다닌다. 한 50년 된 것 같다. 담임목사였던 시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주일마다 출석해 설교를 듣는다. 가끔씩 특별찬양. 헌금 송을 한다.”

-오페라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나비부인 중 마지막 순간이다. 명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참 멋있는 장면이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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