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아내는 천사·남편은 선물’ 오아볼로·윤선자씨 부부

국민일보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아내는 천사·남편은 선물’ 오아볼로·윤선자씨 부부

입력 2011-10-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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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가 합니까. 하필이면 왜 제가 해야 합니까.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아니죠. 그렇죠?” 그녀는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아니, 애걸복걸 애원하며 매달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하나님의 대답은 그녀의 바람과 반대였다. “너다. 네가 해야 한다. 네가 그 사람을 돌봐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과 씨름하기를 1년여, 그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갔다. 서울 응암동 주택가의 지하방. 마치 동굴 같은 그곳은 어둡고 퀴퀴한 냄새까지 풍겼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그녀는 짓눌린 마음으로 지냈다. 자신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께 대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버티다가는 벌을 받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짐을 싸서 그 사람의 집 주소로 부쳤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그곳을 찾았다. “여기서 어떻게 생활합니까. 그리고 뭘 해서 먹고 삽니까.” 무슨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내가 네 아버지다.” 그리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라는 마태복음 6장 28절이 떠올랐다.

하나님 뜻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혔다. 1989년 10월 4일.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15년 연상의 장애인 남자에게 동반자이자 보호자로 살겠노라고 말했다.

윤선자(44) 사모는 이렇게 오아볼로(59) 전도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윤 사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22년간 한결같이 남편의 곁을 지켜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의 분신 역할을 했다. 때론 그의 외로움을 달래는 벗이 됐고, 때론 그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나누어 하는 동역자도 됐다.

하필이면 접니까

북한산 밑 서울 은평뉴타운에 있는 부부의 보금자리를 찾은 날도 윤 사모는 남편이 쓴 ‘희망의 편지’를 봉투에 담고 있었다. 편지를 분류해 봉투에 담아 우표 붙이고 발송하는 일은 윤 사모의 ‘주업’이다. 남편의 대소변과 식사, 집안일을 챙기면서 하는 일이 만만찮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상담전화도 필요에 따라 나눠서 받는다.

오 전도사는 세상에 제법 많이 알려졌다. 그의 기구한 인생사와 희망의 편지 사역은 다수의 매스컴에 소개됐다. 그의 편지로 수많은 재소자, 장애인, 중병 환자, 방황하는 청소년 등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의 감사와 상담 편지가 지금도 밀려든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어떤 목회자나 선교사보다 큰 일꾼이다.

오 전도사는 작은 충격에도 혹은 이유 없이 뼈가 부러지는 몸으로 태어났다.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질환이다. 오규근이라는 이름의 그는 어릴 때부터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달고 지내야 했다.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는 세상과 운명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늘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방치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만한 체구에 성장은 멈췄지만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덜어줬다. 나이 서른이 될 즈음, 우연히 알게 된 바울이라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부터 ‘편지 사역’을 권유 받았다. 아볼로라는 이름도 선물로 받았다. 아볼로는 고린도전서 4장 등에 나오는 복음 전도자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을 소개하고 살아갈 이유를 소박하게 편지에 담았다. 예상 밖의 사실을 알았다. 자기 외에는 모두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불행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이 보내준 답신에서 오히려 힘을 얻기도 했다. 편지 사역의 가치를 깨달았다. 30대 중반에 누나를 따라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여기저기서 편지지와 봉투, 우표 값을 후원하는 이들이 생겼다. 내친 김에 ‘문서가정복음’이라는 작은 책자도 만들었다.

근데 그 책자가 윤 사모와 연결고리가 될 줄이야. 표지에 실린 오 전도사의 사진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돌봐줘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바로 너다!” 그랬다. 그래서 윤 사모는 그렇게 갈등했던 것이다. 이전에 5년 정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상대가 남편으로까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천사가 되다

그러고 보면 부부는 천생연분이다. 하나님이 둘을 맺어줬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 전도사가 무려 7년 동안 자신의 곁에 같이 있어줄 천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지 않은가. 부부는 지금까지 22년 동안 같이 살면서 한번도 다투지 않았다. 서로가 고맙고 장할 뿐이다. 그는 부인을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라고 말한다. 윤 사모도 지지 않고 남편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서로 눈만 마주쳐도 환하게 웃는다. 서로의 장점을 이것저것 들추며 칭찬한다. 서로를 향해 ‘여보’라고 부르는 호칭이 샘날 정도로 다정하다.

윤 사모는 최근 또 한 명의 보배로운 사람을 만났다. 서울 홍제동 요나3일영성원 원장 이에스더 목사다. 지난해 4월 5일,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다. 윤 사모는 그날 처음 영성원을 찾았다가 이 목사의 설교와 기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내면에 한과 설움, 영적인 교만이 첩첩이 쌓여 있는 줄 그날에야 깨달았다. 하나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윤 사모는 그날 일에 대해 “완전히 깨지고 고꾸라졌다”고 표현한다. 이후 이 목사를 영적 멘토로 삼고 매일 영성원을 찾아 눈물을 쏟아낸다.

부부가 말씀 읽고 기도하는 분량은 가히 엄청나다. 먹고 씻고 자는 등 기본 일상과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성경 읽고 기도한다. 세세한 일에까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인도를 구한다.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지만 부부는 태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의 사는 법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특히 무엇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그럴 때마다 부부는 “그냥 산다”고 답한다. 하나님이 그냥저냥 굶지 않고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편지지와 봉투 값을 후원하는 이들이 좀 있지만 생활은 빠듯하다. 윤 사모가 부업을 해보기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음이 풍족한 부부

부부는 언젠가부터 세상적인 욕심과 걱정을 다 버렸다. 오히려 마음은 풍족해졌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주위의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는 등 인정을 베풀고 있다.

부부는 요즘 한 가지 구체적인 소원을 품고 기도한다. 오 전도사의 책을 출간해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물욕에 젖은 사람들에게 자족하는 법을 알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오전에 시작된 부부와의 만남은 오후 3시를 훌쩍 넘겼다. 부부는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배달시켜 손님 대접을 융숭히 해줬다.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내내 아껴둔 질문을 윤 사모에게 던졌다. “지금까지 남편과 같이 살면서 후회한 적 없느냐”고.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변이 왔다.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남편을 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그러자 오 전도사는 아내의 손을 슬그머니 잡으면서 활짝 웃었다. “행복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부의 운명조차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유리창 너머 곱게 물드는 단풍나무가 보였다. 계절 이야기를 하자 추워지면 나들이를 못 한다며 윤 사모가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여기저기 피어 있는 가을꽃을 보며 오 전도사는 연신 예쁘다고 했다. 부부는 계속 웃었다. 부부의 웃음소리가 가을 하늘처럼 청아하고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게 들렸다. 서울 진관동 은평뉴타운 우물골 201동 503호(02-379-8279).

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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