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부흥 운동의 대부 고 김익두 목사 손자며느리 박한나씨의 속아 살아온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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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부흥 운동의 대부 고 김익두 목사 손자며느리 박한나씨의 속아 살아온 세월

입력 2011-12-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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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남편은 중국에서 북송돼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탈북 후 성경공부를 하고 한국인 목사를 만났다는 죄목이었다. 굶어 죽을 수는 없었다. 3남매와 함께 남한으로 왔다. 북한 청진을 떠나 도착한 도시는 낯설기만 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적응은 쉽지 않았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대부인 고 김익두(1874∼1950) 목사의 손자며느리인 그녀는 그동안 북한 공산체제에 속아 살아온 세월만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멘다. 지난 해 10월 탈북한 박무늬(65)씨의 이야기다.

27일 오전, 서울 사당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김일성·김정일 정권과 함께 살아온 60여년 세월을 후회했다. 그녀는 북한에서의 신앙생활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김정일이 사망했지만 북한에서 리비아 같은 재스민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군부 쿠데타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최근 북한 상황을 진단한 그녀의 견해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현지 속사정을 잘 모른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북한에서 준의사(의사 아래 직급)로 일해 온 그녀는 지난 해 10월 세 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현재는 북한교회세우기연합 산하 북한선교전문대학원에 다니며 북한 선교사의 꿈을 다지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왜 탈북했나.

“먹고 살게 없었다. 북한은 90년 중반부터 식량 배급이 끊겼다.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멀리 농촌에 가서 식량으로 바꿔 먹곤 했다. 고민 끝에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1998년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다. 그리고 두 번의 북송 끝에 탈북에 성공해 지난 해 12월 남한에 왔다. 북한 단련대와 교화소 생활은 정말 끔찍했다. 기독교 성도라고 온갖 고초를 3년 동안 겪었으니….”

-한국교회 초기 부흥사인 고 김익두 목사의 손자며느리라고 밝혔는데.

“남편 김광수씨는 할아버지 김익두 목사의 3남 2녀 중 장남의 아들이다. 1950년 10월 14일로 기억한다. 공산군이 황해도 신천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시할아버지 김 목사를 총으로 쏴 죽였다. 당시 8살 어린 남편이 피 흘리는 그 순교 현장을 지켰다.

그 교회 장로가 공산군들에게 ‘예배 끝나고 죽이라’고 하니 장로를 먼저 쐈다. 김 목사도 그날 공산당을 비판하는 설교를 하다 곧바로 들이닥친 공산군에게 돌아가셨다. 시할아버지가 한국교회 신유·부흥 운동의 대부로 불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돌아가실 때 "공산군을 용서하라"고 유언하셨다는 데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북한에선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나.

“몰래 예배를 드렸다. 지하 처소에서 예배드리고 교화소 수용자에게 전도도 했다. 어머니는 밤에 십자가를 목에 걸고 몰래 중얼중얼 기도하시곤 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속아 살았다. 북한의 종교는 ‘수령주의’다. 북한에선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예수님은 김일성이고 김정일인 셈이다. 이제 김정은에게 3대 세습을 한다고 하니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

-남한 생활은 어떤가.

“이번에 처음 성탄예배를 공개적으로 드렸다. 대북선교단체인 모퉁이돌선교회 ‘광야의소리’ 성탄예배였는데 이 예배가 성탄절 날 북한 전역에 방송됐다고 한다. 감개무량하다. 너무 기뻐 소릴 지를 뻔 했다. 생활은 어렵지만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남한교회와 정부에 감사한다.”

-앞으로 계획은.

“북한 선교사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벌써 10여 차례 교회에서 간증도 했다. 하루속히 남과 북이 평화통일이 돼 고향으로 돌아가 시할아버지 같은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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