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호] 분단의 비극에서 교훈을

국민일보

[국민논단-김용호] 분단의 비극에서 교훈을

입력 2012-08-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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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 같은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의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는 셜록 홈스가 미궁에 빠진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해방 직후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과정과 한국전쟁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다.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단서 조각들을 짜맞추어 범인을 찾아내는 탐정소설처럼 해방 직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작은 기록들을 조각조각 이어서 베일에 싸인 비밀을 풀어내었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스탈린은 38선을 왜 수락했나, 중국 공산당에 국·공 내전을 종결하고 연합정부를 수립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스탈린이 왜 30만 대군을 만주에 파견하여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나, 평양의 소련 군정당국이 1945년 10월에 평양 주둔 미군 연락장교의 철수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등이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직후 스탈린이 미국의 한반도 38도선 분할점령을 수락한 이유는 일본의 홋카이도 북반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대미 협력 태도는 곧 바뀌었다. 1945년 9월 개최된 전후 질서 수립을 위한 전승국 외상회의에서 소련의 요구(소련의 태평양 진출 편의를 위한 일본 홋카이도 북반부 점령, 지중해 진출을 위한 트리폴리타니아 할양 등)가 거의 전면적으로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전승국 외상회의 이후 스탈린의 대중정책, 대한반도 정책은 거의 180도로 선회하였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북한지역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소련군정은 평양주둔 미군 연락장교의 철수를 요구했고, 미군 관할지인 옹진반도에 대한 미군 출입을 대폭 제한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절대적인 군사지원을 받고 있던 장개석 군대를 공격하라고 중국 공산당에 지시하였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해방 직후 좌익진영과 우익진영이 힘을 합쳤다면 분단을 막을 수 있었나?”하는 질문이다. 특히 1948년 5·10선거를 앞두고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남북협상파들은 이승만을 비롯한 단독정부 추진세력을 비난하고 선거에 불참하였다. 이 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미 1948년 4월에 조선의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채택할 합의문을 전달하였으니 당시 평양의 남북협상은 스탈린의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하였다.

이 책이 오늘날 우리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해방 직후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는 점이다. 런던 전승국회의에서 스탈린이 원하는 전리품을 얻지 못하자 북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림으로써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또다시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국력의 신장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교훈은 북·중 군사동맹의 역사적 배경이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남북한 통일을 달성하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1946년 7월 중국 공산당이 평양에 설치한 ‘동북(東北)(만주를 의미) 해방전쟁 시기 동북국(東北局) 주조선 사무소’의 기록에 의하면 북한은 단순히 중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라기보다 군사적 요충지(military stronghold)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장개석 군대에 패배한 중공군은 소련군정 하의 북한지역으로 퇴각한 후 재정비하여 나진-선봉, 신의주-단둥, 심지어 남포-다롄 루트 등을 통해 다시 침투하여 장개석 군대를 무찌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길을 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우리가 한반도를 통일하려면 북·중 군사동맹이 필요 없는 동아시아 안보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용호(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