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언제부터 ‘룽징’이라 불렀나

국민일보

[특파원 코너-정원교] 언제부터 ‘룽징’이라 불렀나

입력 2012-09-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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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정부가 있는 옌지(延吉) 시내는 한 줄기 강이 가로지른다. 만주어로 ‘부르하통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푸른 버들이 우거진 강’이라는 뜻이란다. 조선인이 이곳에 터전을 잡기 전에는 만주족 땅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은 옌지가 옌볜에서 제일 큰 도시가 됐지만 19세기 중엽부터 한민족이 대거 이곳으로 이주한 뒤 그 중심지는 룽징(龍井)이었다. 룽징은 옌지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으로 이달 초 두 곳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일송정, 해란강, 용두레 우물, 대성중학교, 윤동주 생가…. 룽징이 옌볜 한민족의 요람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들은 해란강 들판에서 갖은 고생 끝에 벼농사를 짓는 데 성공함으로써 룽징에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 비암산 능선에 있는 일송정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용정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대성중학교는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 아니던가.

이달 초 옌볜조선족자치주 출범 6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았을 때였다. 조선족 매체에서 일하고 있는 언론인들과 저녁에 함께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자 일행 중 한 명이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은 ‘용정’을 ‘룽징’이라고 표기하는 거요?” 그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연변은 우리가 개척했고 우리가 주인인 땅이란 말입니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살아오면서 우리말로 땅 이름을 지었는데 뒤늦게 중국식 지명으로 부르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용정’이란 지명도 용정 시내에 있는 ‘용두레 우물(龍井)’에서 유래했다는 걸 강조했다.

옌지시와 인접한 왕칭(汪淸)현에 있는 ‘배초구’란 곳은 우리말 지명이 먼저였다는 걸 잘 보여준다. 도로표지판에는 한글 표기 밑에 ‘百草溝’로 적혀 있다. 중국식 지명이 앞서 있었다면 한글로는 ‘백초구’로 돼야 맞는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예는 옌볜 일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청나라 창업과 함께 지린(吉林)성 일대 만주족들은 베이징 황실로 옮겨가면서 이 지역을 봉금(封禁)지역으로 묶어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땅에 조상들이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간난고초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와서 우리식 땅 이름마저 팽개치다니…. 그는 울분을 토해냈다.

이쯤 되자 동석한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한성(漢城)은 서우얼(首爾)로 고쳐 부르면서 연변 지명은 왜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다.” “중국은 리밍보(李明博)라고 하는데 한국은 왜 후진타오(胡錦濤)로 불러주느냐.”

그들에게 국립국어원이 표기 원칙을 그렇게 정했노라고 설명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 스스로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아니라 ‘옌볜조선족자치주’로 쓸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던 차였다.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고유의 말과 글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한때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들도 이제 한족 속에 녹아들어 버렸다. 그와 함께 만주어도 명맥을 잇지 못하게 됐다. 옌지 시내 강 이름처럼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치주 내에서 공문서는 물론 도로표지판과 간판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조선족, 아니 한민족이야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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