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대선보도와 경마 저널리즘

국민일보

[여의도포럼-김영석] 대선보도와 경마 저널리즘

입력 2012-10-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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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식 여론조사 신뢰성 의문…후보의 이미지 정책에 말려들 수도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경마 저널리즘(horse-race journalism)’ 논란이 불거진다. 경마장의 중계방송은 우승 다툼을 벌이고 있는 앞선 경주마들의 순위 경쟁만 집중적으로 방송한다. 이와 같이 선거 보도에서 언론이 후보자들의 지지도 순위에만 관심을 두고 있음을 비꼬아 사용한 말이 경마 저널리즘이다.

원래 이는 미국 일리노이대 저널리즘학과 명예교수인 토머스 리틀우드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스포츠 에디터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한 뒤 수십년간 시카고 선 타임스의 정치전문기자로서 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에서 일생을 보낸 베테랑 언론인이다. 그런 그가 미국 언론의 대통령 선거 보도 행태를 한 단어로 요약한 것이 ‘경마 저널리즘’이다.

선거 보도는 후보자들 사이의 정책과 사상을 밀도 있게 비교하고 검증함으로써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포럼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스릴 위주의 스포츠 이벤트 비슷하게 흐르는 것을 비판한 말이 경마 저널리즘이다. 이런 성향이 등장한 데는 미국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초창기 미국 언론인들은 정치 뉴스가 너무 무겁고 진지해 뉴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초적인 우선순위 경쟁을 도입한 것이다.

최근 국내의 많은 연구 보고서들이 우리나라의 선거 보도도 해가 갈수록 경마 저널리즘적 흥미 위주로 흐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후보자들의 구체적인 정책 내용의 비교분석보다는 그들의 지지도 추이에만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후보자들 간에 뚜렷한 정책 차이가 없고 지지율도 엇비슷하기 때문인지 이런 경마 저널리즘 보도 행태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선거 보도의 초점은 양자 혹은 3자 대결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도 경쟁을 아주 자극적인 스포츠 관련 용어들로 묘사함으로써 긴박감을 조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말은 ‘초박빙’ ‘접전’ ‘우세’ ‘승부수’ ‘엎치락뒤치락’ ‘정면돌파’ ‘간발의 차이’ ‘공세’ ‘뒤집다’ ‘반전’ 등이다.

그런데 선거 보도를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경마 저널리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여론조사 방식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각 언론사들이 중구난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그 조사를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다. 똑같은 대상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너무 상이하다 보니 조사 방법 자체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의문이 가게 되는 것이다.

부실한 여론조사의 오용 혹은 남용은 가뜩이나 신뢰성 위기에 봉착한 한국 언론을 더 큰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경마 저널리즘의 오명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뢰받을 수 있는 과학적 여론조사 풍토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

대선을 두 달 정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누가 얼마나 앞서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인기도 조사가 아니다. 각 후보자들이 산적한 국내외적 현안 문제들에 대해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정보다.

최근 선거 보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미디어 보도를 의식해 연출하는 ‘유사사건(pseudo events)’들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이다. 마치 객관적 선거 보도인양 너무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본질보다는 후보자들의 이미지 고양 정책에 말려들게 된다.

후보자들의 과거 언행이나 업적을 세밀하게 검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미래 세상에 대해 지니고 있는 후보자들의 비전과 지식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김영석(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