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종교적 재해석

국민일보

단군신화의 종교적 재해석

입력 2013-03-14 11:15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단군신화의 종교적 재해석

홍순주(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회장 겸 성균관 석전교육원 겸임교수·영락교회 집사)



먼저 단군신화를 해석하기 이전에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 H. Carr가 쓴 What is history?(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의 제 1장 <역사가와 사실들>을 살펴보면 역사의 정의가 잘 나타나 있는데, 역사란 단순히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facts)을 나열하는 것이거나 혹은 현재 활동 중인 사학자들의 주관적인 해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의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를 사는 사학자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 마련된 해석이 서로 대화하고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역사 정의에 입각해서 기존 단군신화를 직설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작업이 매우 바람직해 보이며 특히 단군신화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선사시대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한국 상고사의 실제역사라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그 상징적 의미를 재해석해 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보여 진다.

과거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우리민족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웠던 단군조선의 역사가 허황된 신화로서 가르쳐 왔다가 최근 2008년 국사 교과서에 청동기 시대의 부족국가였다고 서술이 바뀌면서 비로서 그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군신화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역사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이미 민족사학자들에 의해서 주창되어 온 바 있으며 여기서는 우리민족이 원래 천손민족이었다는 공감대 속에서 이를 종교적으로 재해석해 보는 것이 이 순간 훨씬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단군신화에서는 중앙아시아 천산 근처에서 이주해 온 환웅 천손족이 북만주지역에서 곰에서 환생한 웅녀와 결혼하였다는 설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남의 땅에 이주해 와서 여자와 결합했다는 것은 역사적 해석으로는 그 지역의 영토를 정벌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은 당시 현지에서 토테미즘(Totemism) 의식으로 동물을 신봉하여 곰을 섬기는 웅씨 족과 호랑이를 섬기던 호씨 족이 살았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었던 환웅 족이 당시 외부에서 들어와서 현지에서 토테미즘 곰 신앙으로 살았던 거주민들을 장악했다는 것인데 무기로써가 아니라 하늘의 계율을 전파하는데 성공해서 웅씨 족 사회를 하나님을 믿는 나라(神市)로 만들었다는 뜻으로 재해석해 볼 수 있다.

즉 호씨 족이 성질이 급하고 사나워 동굴 밖으로 뛰쳐나간 반면에 천손 민족 환웅이 인내심이 많고 온순한 웅씨 족의 여자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현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과 사상을 선포하였을 때 호씨 족들은 이를 반항하고 거부하였지만 웅씨 족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종교를 순전하게 받아들여 천계(天戒)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환웅이 웅녀와 결합하여 단군 임검(壬儉, 통상적으로 왕검)을 낳아 단군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였던 환국과 배달국에 이어 북만주 땅에도 하나님을 영접하는 새로운 밝달 나라를 세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군조선을 일컬을 때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여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표현을 하였고 나라를 건국한 날을 개천(開天)절로 명명한 이유는 신시가 글자 그대로 신의 도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거룩한 도성>을 의미하며, 개천이라는 용어도 직역하면 <하늘을 열었다>뜻으로 하늘로 표현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맺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기념하였던 것으로 단군조선은 황궁씨 계열의 천손민족이 살았던 마고성(符都)을 회복시킨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이때껏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처리하여 한갓 허구적인 가공의 설화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단군조선 역시 초대 단군왕검(BC 2333년)부터 47대 단군 고열가(BC 238년)까지 2096년 간 실제 왕력을 갖추고 중원을 다스렸던 위대했던 나라로서 위치상으로 북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존재하였기 때문에 분명 우리민족에게 가장 밀접한 실질적인 원시국가인 셈이다.

더욱이 일제의 단군신화 영향으로 우리나라 상고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대부분의 교직자들은 아직도 단군(檀君)이라는 명칭이 기원 전 제정일치 시절에 제사장이면서 부족장이었던 인물로서 사회적 직분을 나타내는 것임을 잘 알지 못하고 단지 단군을 샤마니즘 적인 해석으로 무당으로 알거나 우상으로 경배되는 토속 신(神) 정도로만 인식하는 역사적 무지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 단군조선의 역사 속에는 단군이 우상이나 신(神)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받드는 천군이자 백성을 지도하는 부족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왔던 우리민족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까닭에 우리민족이 서양의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을 섬기던 천손민족이라는 사실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회복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로 대두하게 된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많이 본 기사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