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폭력의 반대말은?

국민일보

[글로벌 포커스-염운옥] 폭력의 반대말은?

입력 2013-06-0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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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폭력의 반대말은 대화다. 지난달 22일 영국 울위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폭력에 맞서는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대낮에 군인 한 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상대로 10여분 동안 대화를 끌어간 잉그리드 로요-케네트(48)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용감한 행동 덕분에 추가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살인의 폭력과 맞대결하는 잉그리드의 뒷모습 사진은 전 세계로 전송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울위치의 천사’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로요-케네트는 콘월에 거주하는 백인 중년 여성이다. 이미 성인이 된 딸과 아들의 성은 바라다란. 22년 전 이혼한 두 아이의 아버지는 이란 출신이다. 슈퍼마켓 종업원, 번역 아르바이트, 교사 등을 하며 두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사건 당일은 23세 생일을 맞은 아들을 만나러 런던에 가는 길이었다. 희생자 리 릭비에게 다가가 생사를 확인한 카리브계 흑인 여성을 제외하면 50∼60명이나 되는 군중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괴한의 말을 들으려 했다. 그녀는 용의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테러범은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영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그녀는 믿었다. 자신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언론을 부담스러워하며, 영국시민으로서 어머니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태생적으로 우파이며, 고든 브라운이 아니라 데이비드 캐머런에게 투표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전 세계는 극단주의자들의 비열한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력의 세계화다. 지난 4월 16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폭탄테러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며칠 전 6월 5일에도 파리 시내에서 스킨헤드들이 좌파 대학생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9·11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 각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민주정치’가 아니라 ‘안전정치(securitocracy)’ 시대라고 할 정도로 ‘치안’의 명목 아래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는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2011년 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브레이빅의 무차별 테러로 청소년 77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민자를 향한 인종증오 범죄와 폭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극우주의자의 폭력에 맞서는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폭력,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질긴 악순환 속에서 이제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세계화의 경로를 따라 폭력도 세계화하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로요-케네트 같은 사례는 한낱 미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왓츠가 형상화했듯 희망이란 원래 끊어질 듯이 끊어지지 않는 실낱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저벅저벅 걸어간다. 희망의 징후는 또 있다. 이번 울위치 사건은 EDL(English Defence League·영국수호동맹) 같은 극우단체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EDL은 전국 각지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경찰과 충돌했다. 요크(York)에서 EDL 지지자들은 모스크 앞에 성조지(St. George)기를 내걸고 항의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모스크에서 차 한 잔과 비스킷을 내오며 대화를 시도했고, 여기에 EDL 회원들이 응하면서 팽팽하게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일시에 완화되었다. 나중에 즉석 축구시합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무슬림 어린이가 든 패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요크 모스크는 극단적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희망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대화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주체를 모두 변화시키는 대화야말로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이다. 대화의 힘을 믿어보는 데서 시작하자. ‘울위치의 천사’처럼 말이다.

염운옥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