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허부경] 그 어떤 교화 프로그램도 신앙보다 못하더군요

국민일보

[이 땅의 희망지기-허부경] 그 어떤 교화 프로그램도 신앙보다 못하더군요

입력 2013-08-16 16:51 수정 2013-08-1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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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장 허부경 전도사

“수감자가 ‘낙오자’이자 ‘실패자’라고요? 제가 보기에 결단코 이들은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다만 ‘순간의 실수’로 교도소에 오게 된 것뿐이지요. 오히려 예수를 모르고 죽음 뒤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 실패한 삶 아닐까요.”

수감자에 대한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장인 허부경(62·여) 전도사의 생각은 명료했다. 그는 수감자를 색안경 낀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저 신앙으로 죄를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으로 봤다. 1987년부터 26년간 교도소 선교를 해 온 허 전도사는 교회 성도와 함께 일주일에 4∼5번씩 교도소 문을 두드렸다. 그는 어떤 악천후에도 어김없이 교도소를 찾았다.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날도 쉬지 않았다. 갇힌 자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의 열정 덕분에 매년 5만여명의 수감자들은 허 전도사의 설교를 정기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의지에 수감자들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간식을 먹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사형수와 장기수들이 하나둘 그의 설교를 듣고 새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잔혹한 살인마나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 사기꾼도 허 전도사가 전하는 말씀 앞에선 순한 양이 됐다. 영어(囹圄)의 몸인 이들은 조건 없이 죄인을 사랑해 대신 고난을 받은 예수의 삶에서 희망을 찾았다.

이들에게 ‘영적 어머니’로 불리는 그를 지난달 29일 광주 운암동 아델리안교회에서 만났다. 지난 7월 여성 최초로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장으로 선출된 허 전도사는 ‘교정선교 및 봉사는 은밀한 가운데 해야 한다’며 가급적 말을 아끼려 했다. 하지만 수감자들이 신앙으로 교화될 수 있다는 소신만은 여러 차례 거듭해가며 분명히 밝혔다.

“매달 15일 정도를 교도소 선교를 위해 사용합니다. 한 시간 정도 말씀을 전하는데도 이 시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삶을 사는 이들이 나와요. 이때 알았죠. 신앙이 어떤 교화 프로그램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축복의 비결

교도소 선교에 나서기 전 허 전도사는 소위 말하는 ‘전도왕’이었다. 매주 1명씩 전도해 매년 52명을 전도했고 교회 총동원 전도주일엔 350명을 데려오기도 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이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는 축호전도를 열심히 한 결과였다. 얼마나 놀라운 성과였던지 6년간 전국의 1000여개 교회가 그를 전도 간증자로 초빙키도 했다.

그가 전도에 열성을 보인 건 ‘마음의 평안’과 ‘축복’을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광주지법 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정착한 그는 친구 한 명 없는 타지 생활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벽에 울리는 은은한 교회 종소리를 들었다. 학교 선배의 권유로 16세 때 교회에 한번 나간 뒤 발길을 끊었던 그였지만 타지에서 귀에 익은 종소리를 듣자 저절로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가면 친구가 생길 것 같았던 23세의 허 전도사는 제 발로 목포제일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

“평소 행복이란 ‘마음의 평안’이라 생각해 왔는데 설교를 듣고 교회 봉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문득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마음의 평안을 평생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는 무조건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청년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처럼 가정이 신앙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평안과 축복이 허락된다고 확신했거든요.”

‘믿음의 동역자’를 찾던 허 전도사는 교회 장로의 소개로 지금은 건설회사 대표가 된 정철준 장로와 76년 결혼했다. 원하는 바대로 신실한 신앙인을 배우자로 맞은 그는 하나님께 축복 받은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신앙만 보고 신랑감을 구한다며 결혼을 마뜩찮아 했던 부모님께 보란 듯이 살기 위해서기도 했다.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키로 한 허 전도사는 하나님이 무엇을 가장 기뻐하시는지 고민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정을 축복해 주실 것 같았다. 그 결과 얻은 결론은 전도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교리를 잘 모르면서도 겁 없이 사람들에게 전도했어요. 처음엔 기복신앙으로 시작했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그저 하나님을 위해 전도하게 됐지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 오히려 제가 하나님을 시나브로 알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의 동력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가 되더군요.”



옥에 갇힌 자를 생각하라

10여년간 교회에서 전도왕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을 전도한 허 전도사는 자신이 인도한 이들이 신앙을 갖고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다. 더 나아가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방법을 골몰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교도소 선교’였다. 법원 인근 사택에 살며 수감자를 적잖게 봐왔던 허 전도사는 수의를 입은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예전부터 수감자를 볼 때면 ‘만약 내가 죄수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어요. 이전엔 그저 ‘자유가 없으니 힘들겠지’란 생각만 했는데 돌이켜보니 이들이 신앙을 갖기 극히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옥에 갇혀 있으니 누군가 전해줘야만 믿을 수 있는 거잖아요.”

마침 그 당시 읽었던 성경 말씀은 허 전도사의 교도소 선교의 도화선이 됐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는 가난한 자, 헐벗은 자, 나그네 된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말해요. 이 말씀을 보고 교도소 선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역이란 걸 확실히 알게 됐지요.”

87년 교도소선교단체인 ‘임마누엘선교단’을 조직한 허 전도사는 가장 먼저 인근의 광주교도소를 찾았다. 어릴 때 봐서 익숙한 모습이라고 하나 수감자들의 차가운 눈빛은 그를 주눅 들게 했다. 당시 36세로 이들에게 선뜻 다가서기 어려웠던 허 전도사는 한 목회자에게 집회 설교를 요청했다. 아무래도 남성 목회자가 말씀을 전해야 이들이 귀를 기울일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 목회자는 자주 집회에 빠졌다.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500여명의 수감자에게 실망을 안길 수 없었던 그는 서툴게나마 그간 외운 성경 구절을 열거하며 설교했다. 처음엔 어색하게 마이크를 든 젊은 여자를 경계 반, 호기심 반으로 바라보던 수감자들은 허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경계의 눈빛이 점차 감사와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바뀌었다. 말투가 나긋나긋해졌고 출소 후 꿈이 생긴 이들도 늘었다.

이는 사형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일대일 상담으로 만난 사형수 가운데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이 꽤 됐다. 앙심을 품고 부모나 배우자를 살해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조직폭력배로 살인을 저지른 뒤 인육을 먹은 이들도 있었다. 저지른 죄 면면은 끔찍했지만 그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보니 심성이 순수하고 착한 이가 적지 않았다. 또 이들 대부분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그에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여러 수감자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에 죄를 지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방향을 못 찾아서, 술에 취해서 충동적으로 그랬다고요. 그러면 저는 이들에게 모든 죄엔 ‘영적 배경’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성경 요한1서 3장 8절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와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영적 존재인 마귀가 사람에게 악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하도록 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이런 영적인 배경을 알아야 죄로부터 돌아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인자의 영혼이라도 모두 구원하기 원하세요.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기에 저와 임마누엘선교단이 26년간 이 사역을 중단 없이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적 어머니

하지만 주변에선 그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전국 각지의 교도소를 찾는 것을 놓고 ‘유난스럽게 신앙생활을 한다’며 험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조차도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전도대상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거절할 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그러나 교도소 선교를 결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전도할 때 상대방이 당연히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힘이 쭉 빠져요. 그만두고 싶다가도 나중에 그 영혼이 예수 안 믿고 후회할까봐 계속 찾아가게 됩니다. 교도소에 있는 분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몰랐거나 복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들이거든요. 그래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계속 이 사역을 하다 보니 전도는 내가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나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죠.”

90년 광주교도소 교정위원에 위촉된 그는 20여년간의 교정행정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또 교도소 선교를 활발히 펼친 점을 인정받아 소속 교단 노회에서 전도사 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받았다. 평신도로 교도소 선교에 나섰던 그는 현재 남편 정 장로가 개척해 헌납한 아델리안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장 활동을 하고 있다.

춘천과 여주, 청송교도소에서 23년간 복역한 조직폭력배 출신의 수감자 한 명이 그의 설교를 듣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의 편지가 최근 가장 인상 깊었다는 허 전도사는 교도소 사역에 평생을 바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설교를 듣고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수감자 모두가 바르게 사는 건 아녜요. 다시 죄를 범해 교도소에서 만나는 이들도 꽤 많으니까요. 선하게 살고자 해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아서 다시 왔다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서 이들을 품기 위해선 한없이 용서하는 긍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치 구원받고도 계속 죄를 짓는 우리의 모습처럼요.”

아델리안교회 한쪽에는 수감자들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쌓여 있었다. 편지 속에 ‘영적 어머니’ ‘인생의 전환점’ ‘포도원 주인’ 등 허 전도사를 가리키는 애정 어린 표현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그냥 하는 말일 뿐이죠, 뭐”라고 말하면서도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적 어머니’는 그에게 잘 맞는 표현인 것 같았다.

광주=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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