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38)] 20대 처녀 몸으로 헐벗은 이웃 돌본 ‘거리의 성자’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38)] 20대 처녀 몸으로 헐벗은 이웃 돌본 ‘거리의 성자’

입력 2013-09-25 17:13 수정 2013-09-25 17:45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YWCA 인물산책 ‘길을 따라서’-방애인

‘거리의 성자’로 불렸던 방애인(1909∼1933) 선생은 황해도 황주읍에서 방중일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집안이 부유해 조부 방흥복씨 때부터 자선사업을 많이 해왔다. 방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정신복씨와 어머니 김중선씨를 따라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1926년 3월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이화여자대학 문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모님의 허락을 얻지 못해 꿈을 접고 전주 기전여학교 발령을 받아 재직하게 됐다.

방 선생은 호수돈여학교 시절 당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전주서문밖교회(현 서문교회) 배은희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전주로 내려온 뒤부터 서문밖교회에 출석, 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지도를 받았다.

전주Y서 활동, 보육원 설립

방 선생은 1926년 4월부터 3년을 근무한 뒤 모교인 황주 양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다. 서문밖교회 1000여명의 교인이 눈물을 흘리며 그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방 선생은 “전주에 와서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렇듯 눈물로 아쉬워하니 두렵기 짝이 없다”며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성심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뜻대로 2년 뒤인 1931년 9월부터 다시 전주 기전여학교에 부임했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전주에서 생활했다.

전주여자기독교청년회(전주YWCA)에서 중진으로 활동하면서 방 선생은 생활과 행동 및 신앙 태도에서 뭇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며 청순한 자태로 봉사하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됐다.

당시 서문교회에는 전주YWCA 총무로 내려와 있던 이효덕이 시작한 보육원이 있었다. 말이 보육원이지 교회 지하실 방 한 칸을 빌려 운영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방 선생은 제대로 시설을 갖춘 정식 보육원 설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먼저 월급을 모아 기본금을 만들고, 전북노회 소속 교회들을 순방하며 호소했다. 마지막엔 전주시내 8000가구를 집집마다 돌면서 기금을 모았다. 마침내 1931년 성탄절 서문교회와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전에 유흥가였던 집 한 채를 개조해 전주보육원을 개원했다. 보육원 설립 후에는 방학이 돼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들을 돌봤다.

또 방 선생은 학교 수업을 마친 후 거리로 나와 걸인 수용소와 빈민들을 돌봤다.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자기 주머니를 털어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으로 도왔다. 그들 속엔 한센병 환자까지 있었다. 방 선생은 24세의 처녀 손으로 그들의 썩어가는 살결을 어루만지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찬 그에게 한센병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구제의 삶을 실천하는 그의 삶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젊은 미혼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깍듯이 ‘방애인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방 선생은 1933년 6월 30일 방학식을 마치고 고향인 황주에 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친척들과 친지들을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고향 교회의 여름성경학교 인도에 열성을 쏟다가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나 개학날이 다가오자 강한 책임감으로 전주 학교로 일단 복귀했으나 곧 예수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병세는 더욱 위중해져 9월 23일, 2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의 사랑의 실천에 감화 받은 학생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애도하며 소복 차림으로 긴 장례 행렬을 이뤘다. 방 선생은 전주 화산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1999년 전주 서문교회 안식원(완주군 비봉면)에 이장됐다.

방 선생 기념사업특별위원회 발족

전주YWCA는 2002년 7월 29일 전 회장단과 임원진이 모여 ‘방애인 선생 기념사업 특별위원회’(위원장 홍기자)를 발족했다. 1934년 전주 서문교회 제3대 목사로 시무하던 고 배은희 목사가 펴낸 ‘방애인 소전’을 현대어로 옮겨 ‘조선성자 방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했다. 11월에는 ‘방애인 소전 출판기념회’를 열고 그의 삶을 재조명한 바 있다. 2003년 4월 29일 전주Y 회원들을 중심으로 ‘방애인봉사단’을 창단했다. 지금까지 방 선생의 삶을 본받은 많은 이들이 봉사의 불꽃을 이어가고 있다.

전주Y는 방 선생의 숭고한 사랑과 나눔의 삶을 알리기 위해 2011년 11월 17일 전주연세교회에서 ‘조선성자 방애인 뮤지컬’을 올렸다.

방 선생은 일제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던 백성들을 위로한 사랑의 화신이었다. 세상에서 버려진 고아와 걸인들을 돌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 성자였다. 전주Y는 현재 ‘방애인 봉사의 날’을 정해 Y틴 청소년부터 일반 회원들에 이르기까지 상처 속에서, 어려운 곳에서 소금이 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일 방 선생 추모 80주년을 맞아 안식원을 찾고 추모예배를 드리며 방 선생의 고귀한 삶을 다시금 기렸다.

김은진(전주YWCA 홍보출판부 부장)

고 방애인 선생 약력

1909년 9월 16일 황해도 황주 출생

1926년 3월 개성 호수돈여학교 졸업

1926년 4월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 부임, 전주서문밖교회 출석

1926년 전주YWCA(전주여자기독교청년회) 활동

1927년 전주YWCA 보육원(전주보육원 시초) 건축 운영

1932년 여성계몽운동(금연, 금주, 축첩 배제 운동) 전개

1933년 9월 23일 별세(24세)

많이 본 기사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