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2) 케냐 소녀 후원하던 온가족 “우리 케냐로 갈까?”

[역경의 열매] 곽희문 (2) 케냐 소녀 후원하던 온가족 “우리 케냐로 갈까?”

입력 2013-09-30 17:43 수정 2013-09-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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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케냐 고로고초 쓰레기촌 어린이를 위해 정기후원으로 돕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딸이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저금통을 나눠주며 돕기를 권유했고, 우리가 사는 일산의 호수공원에까지 나가 어깨띠를 두르고 일명 ‘100원의 기적’ 캠페인을 펼쳤다. 어려움 없이 살아온 딸에게 비슷한 나이의 고로고초 소녀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고 이 때문에 돕고 싶은 마음이 여러 행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여기엔 아내도 적극 동조했다.

그런데 이런 순수한 우리의 나눔운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움을 주는 NGO단체가 우리 활동을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사에 알려줬는지 우리 모금 모습을 취재해 간 것이다. 이 내용은 저녁 9시 뉴스에 방영됐다. TV뉴스의 위력은 참으로 컸다. 의도와 달리 우리 가족이 화제의 인물로 세상에 떠버린 것이다. 우리는 “고통받는 지구촌 이웃을 위해 발벗고 모금하는 갸륵한 가족”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내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툭 튀어나왔다. 말은 마음에 담긴 생각이 언어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았다. 아내와 딸에게 나도 모르게 “우리 그냥 케냐로 갈까?”란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쉽게 내뱉는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 말의 변형이었다. 당연히 아내와 딸이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뛸 줄 알았는데 반응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아내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동조의 뜻을 보낸 것이다. 나는 내친김에 더 세게 이야기했다. 아내가 만류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 학원 정리해 재산도 다 나눠주고 상민(딸)이도 데려가자.”

그러나 아내는 여기에도 신뢰를 보내며 긍정을 해주었다. 나는 당장 농담이었다고 무르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했다. 정말 케냐로 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재미있는 인생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이 일을 정말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그 결과 우리가 아프리카에 가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NGO나 선교전문단체의 선교사 파송을 받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NGO 대부분이 기독교정신으로 출발했고 구성원이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생짜 비기독교인이었다. 교회를 다녀야 파송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상황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2007년 3월 어느 주일날, 누구의 인도함도 없이 자의로 교회에 출석했다. 이는 부족한 우리 부부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쓰시겠다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교회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목사님 설교는 표현이나 내용이 이해가 안 되니 자장가처럼 들렸고 즐기던 술 담배는 도저히 끊지 못했다. 난 2층에 있던 교회의 예배 후에 1층에 있던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이런 내게 하나님께서는 방향키 역할을 해 줄 집사님 한 분을 붙여주셨다. 그분은 내가 기독교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쉽게 받아넘겼고 중보기도학교에서 훈련받을 것을 권유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이곳으로 인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난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그 중보기도학교가 신청자가 많아 오히려 면접 후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와 맞물려 NGO에서 케냐지부장을 모집하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꿈이 이루어지는가 흥분이 되었다. 일단 중보기도학교 면접에 응시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난생처음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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