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종 & 마음의 종] 교회 종, 소리를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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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종 & 마음의 종] 교회 종, 소리를 잃다

입력 2013-12-27 18:50 수정 2013-12-28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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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鍾)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빌딩에서 일하고, 종지기가 사라진 교회에 다닌다. 교회의 종은 하나 둘 전시품이 된 지 오래다. 교회 종소리는 한때 새벽기도를 재촉했고 마을의 경사나 부음을 전했다. 종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퍼뜨린다. 종소리가 모두를 위한 울림이라면 종은 항상 울려야 할 것이다. 연말 거리에서 울리던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는 31일 멈출 것이다. 서울 종로 보신각 종은 자정 새해를 알린 뒤 그친다. 서울 도심에서 매일 정오 울리는 종.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종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종은 누가 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종- 삼종기도(Angelus)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오전 서울 정동 성공회 서울대성당 종루에 올랐다. 1층 예배당에서 자물쇠로 잠긴 문을 포함해 4개의 문을 열고 예배당 천장을 가로 질렀다. 정창진 부제의 안내로 좁은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1926년 영국 러프버러에서 제작된 무게 2t의 육중한 종이 눈앞에 나타났다.

“종 치는 교회가 거의 사라졌지요. 서울에서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교체되지 않고 계속 울리는 종은 이게 거의 유일할 겁니다. 일제시대 교회 종이 대부분 공출됐고 교체가 됐거든요.”

무려 87년 동안 매일 광화문 사거리에 울린 종. 종 아랫부분부터 추가 달린 안쪽으로 만졌다. 가벼운 접촉에도 ‘댕∼’ 하고 약하게 울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종소리가 신촌 이대나 연대까지 들렸다고 해요. 지금은 자동차 소음도 심하고 높은 건물에 소리가 반사돼 안 들리지만요.” 이경호 주임 신부가 종루를 둘러보기에 앞서 해준 얘기다. 실제 광화문 인근 대형 빌딩에서 각각 5, 7년씩 일한 회사원 2명은 모두 “종소리를 사무실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인근 유서 깊은 교회는 대부분 종을 아예 없앴거나 전시하고 있다. 치더라도 1년에 1∼2차례에 불과하다.

종지기란 말도 생소해졌다. “성공회 대성당에는 80년대까지 종지기가 상주하며 종을 쳤어요. 이후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낮 12시와 저녁 6시에만 쳐요. 아침 6시는 여건상 치지 못하게 됐죠.” 안동 일직교회에서 16년 동안 종지기로 일했던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도 83년 종지기를 그만뒀다.

유럽에서는 하루 3차례 종을 쳤고 이 종에 맞춰 기도했다. 삼종기도(三鐘祈禱)라 불린다. 한국에서도 80년 중반까지 새벽과 저녁 2차례 종치는 교회가 제법 있었다. 이젠 주일 예배에 앞서 종 치는 교회가 간혹 있다. 매일 종 치는 교회는 희귀하다. 안덕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교수는 “종소리는 교회력 관점에서 1년 단위, 하루 단위의 시간을 더 나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기 위한 청각 신호”라고 말했다.

공동체를 위한 종- 시계·조종(弔鐘)…

교회 종은 모두를 위한 종이기도 하다. “성공회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뜻으로 치는 조종을 나이만큼 쳐요. 교우 중에 아흔 넘은 분이 돌아가시더라도 그 나이만큼 종을 쳐요. 그때는 종 치는 사람 팔이 좀 아프겠죠?(웃음). 종소리가 계속 이어지면 어느 분이 숨졌구나 짐작할 수 있었겠지요. 종은 기쁠 때 치고 영혼이 떠날 때 울리는 거예요. 태어나 세례 받고 결혼하고 장례할 때 모두 치니까요.” 종루 문을 열면서 정 부제가 말했다.

지금도 인천 강화도 성공회 성당은 마을 장례와 결혼 등 애경사 때 종을 울린다. 과거 교회 종은 마을 시계 역할을 했다. “제가 어릴 때는 교회에서 새벽예배 종이 울리면 농부들이 일어나 들에 일하러갈 채비를 했어요. 종이 없는 교회는 빈 가스통을 나무 방망이로 때리기도 했고요.” 충남 예산이 고향인 70대 장로의 전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는 더 뚜렷하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6세기 무렵부터 교회는 출입구 양쪽에 탑을 2개 세우고 종 2개를 매달았다. 한 종은 마을의 종, 한 종은 교회의 종으로 사용했다.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은 “화재 등 사람들이 모여 함께해야 할 일이 생길 때 마을 종을 울리고 교회 종은 평일에는 기도 시간, 주일에는 예배 시간을 알릴 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중세 교회는 마을의 정신적 행정적 중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당 종루 문을 닫고 나왔다. “올라온 김에 광탑(光塔)에도 가보시죠.” 성공회 지붕 위에 가장 높이 솟은 탑이었다. 종루로 올라올 때보다 계단이 더 좁았다. 사방으로 뚫린 광탑 사이로 시내가 다 보였다. “서울광장 경복궁 덕수궁 경복궁 다 보이죠? 종소리는 교회 마당을 넘어 멀리 울려 퍼지잖아요.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신앙을 선포하는 복음적이고 선교적인 기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에 자부심이 잠시 어린다.

요즘 새로 짓는 교회는 종탑을 설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67년부터 성구를 제작·판매해 온 임선재 성애성구사 대표는 “80년대까지는 종 주문이 들어왔는데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주문이 거의 없다”며 “교회 종을 제작할 수 있는 곳도 아마 이젠 전국에 1∼2곳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주택가 교회의 경우 타종에 일반인의 불편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 최근 새 예배당에 입당한 서울의 한 교회는 영국 웨일스에서 종을 들여왔다. 이 교회는 최근 성탄절을 맞아 한 차례 종을 쳤지만 정기적으로 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천에게 종소리의 울림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박종환 실천신학대학원 교수는 “침묵과 소리는 신의 부재와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양면이다. 종소리는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또는 멀리 떨어져 있는지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종소리는 일종의 상징이다. ‘종소리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도 시간을 일과 중에 정하고 지키는 것이 종소리의 회복이 될 수 있다. 안 교수는 “종소리가 없더라도 우리 각자 스스로 종을 울리면 어떨까. 교회 공동체나 개인이 시간을 정해 놓고 일정한 주제로 기도를 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식사 시간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쁘게 보내는 1분, 1초가 하나님의 시간 ‘영원’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든지 홀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중략) 사람을 떠나보내지 말아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기에’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인 존 던(1572∼1631)이 장례식 조종을 두고 쓴 시다. 정 부제는 예배당 예복실로 내려와 줄을 잡았다. 종을 치기위해서다. 낮 12시 정각. ‘대애앵 ∼ 대애앵 ∼ 대애앵∼.’ 당신을 위해 종이 울린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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