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산업사 바꾼 기술집단, 위그노

국민일보

[청사초롱-홍하상] 산업사 바꾼 기술집단, 위그노

입력 2014-01-0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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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란 종교개혁시대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시기의 프랑스 내 칼뱅파 신도를 말한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종교 개혁에 참여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등장했는데 칼뱅 등장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대다수는 칼뱅파에 가담했다.

1559년 칼뱅파는 파리에서 제1회 전국 개혁파 교회회의를 열었고 신앙의 기본인 ‘프랑스 신조’를 채택한다. 이때부터 프랑스 내 개혁파의 조직화가 진행됐다. 16세기 초 프랑스에서 확산된 교회 개혁운동은 정부 탄압으로 수많은 망명자를 낳았다. 당시 위그노들은 섬유방직 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술로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위그노들을 가톨릭이 아닌 칼뱅파 신교도라는 이유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국 가톨릭과의 대립이 격화돼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레메오의 축일에 위그노 대학살이 진행됐다. 이후 1598년 프랑스 정부가 낭트칙령을 선포, 위그노들의 종교적·시민적 자유를 박탈하자, 40만명의 위그노들이 국외 탈출을 시작했다.

프랑스 탈출해 각국에 기술전수

위그노들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미국 등지로 대탈출을 감행한다. 네덜란드로 탈출한 위그노가 6만5000여명, 독일 3만여명, 스위스 2만2000여명 등이었고, 프랑스에 남겨진 위그노의 수는 1500명도 되지 않았다. 제철, 염료, 화학 등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위그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프랑스의 산업 기반이 붕괴됐다. 영국의 찰스 2세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던 위그노를 받아들이기 위해 특별 이민법을 만들었고, 영국으로 이주한 위그노들은 증기기관의 기반 기술과 면방직 공업의 기틀을 마련해 주어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된다.

스위스로 탈출한 위그노들은 정밀기술 산업을 가지고 와 샤프하우젠과 쥐라 지방에 정착해 그곳에서 시계를 만들었다. 스위스인들은 위그노들이 갖고 있는 시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17세기가 되자 주네브에 시계를 거래하는 조합이 탄생하고, 1845년부터는 시계산업이 기계화되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계를 유럽의 각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의약품 제조기술도 가르쳐 주어 오늘날 스위스를 세계 3위권의 제약 강국으로 만들었다. 스위스에 금융산업이 발전한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네브 뒷골목에 소규모 은행을 열었는데, 유사시 정변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내역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 재산형성 과정, 예금액 등을 알 수 없도록 했고, 그러한 은행들이 바로 스위스 비밀은행이 되었다.

독일 역시 위그노들을 받아들여 티센철강과 같은 철강 산업을 일으킬 수 있었고, 이것이 벤츠, BMW 등 자동차 산업으로 파급되었다. 미국의 경우 18세기 초 이민 온 위그노들이 뉴욕주 팔츠에 자리 잡으면서 탄약기술을 가르쳐주어 미국의 서부개척시대가 가능하게 되었다. 위그노는 금융업도 일으켜 워런 버핏과 같은 금융의 귀재를 탄생시켰고 화학산업에 진출, 듀퐁 그룹을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 역시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망명한 위그노의 후손이었던 윌리엄 고셋이 효모 기술을 개발해 줌으로써 기네스 맥주를 세계적인 맥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였다.

우리도 기술인에게 규제 풀어야

위그노들은 이처럼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고, 오늘날 선진국들의 산업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 우리 한국은 어떠한가. 국내의 기술인, 기업인들에게조차 각종 법규와 금융제재로 기술의 발전을 막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좀 더 과감해야 한다. 그것이 3년 후 중복업종이 많은 일본, 중국과의 사이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홍하상(논픽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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