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푸드트럭

국민일보

[뉴스룸에서-태원준] 푸드트럭

입력 2014-04-1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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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미국 텍사스의 목장 주인 찰스 굿나잇은 카우보이들의 숙원을 풀어줬다. 소떼 몰고 들판에 나가서 귀찮게 불 피우지 않고 따뜻한 식사를 하는 것. 굿나잇은 군용 마차를 개조해 부엌용 조리 기구를 설치했다. 이를 몰고 들판을 다니며 카우보이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구워주고 커피를 끓였다. ‘척 왜건’이라 불린 이 ‘밥 마차(馬車)’를 미국인들은 푸드트럭의 원조로 꼽는다.

서부개척 시대에 뿌리를 둬서인지 푸드트럭에는 도전의 DNA가 있다. 1974년 LA의 한 술집 앞에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 라울 마르티네스가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이색 음식 타코를 즉석에서 요리해 팔았다. 이는 미국의 거리음식을 ‘시크(chic)’한 문화로 바꾸는 도화선이 됐다. 그의 타코 트럭은 지금 20개 레스토랑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킹 타코’가 돼 있다.

한국인 이민자 로이 최는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가출과 마약을 하던 문제아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얻지 못하다 2008년 불고기와 김치를 응용한 ‘고기 코리안 BBQ’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그는 푸드트럭에 트위터 마케팅을 도입했다. ‘오늘은 몇 시에 어디로 트럭이 간다’고 트위터로 알리며 장사하자 수많은 팔로어가 생겼고 2년 만에 미국의 신인 셰프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부근에는 베트남샌드위치 푸드트럭 ‘반미브로스(Bahn Mi Bros)’가 등장했다. 안희용(34)씨가 이 트럭을 몰고 나오는 시간은 밤 11시였다. 다음날 새벽 5∼6시까지 장사한 뒤 그는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낮에는 은행 청원경찰, 밤에는 이태원 푸드트럭 상인으로 ‘투잡’ 생활을 했다. 바텐더로 10년 일하다 창업자금을 마련하려 잠을 버리고 도전한 것이다. 그는 올 2월 트럭을 접고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베트남식당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서울 상수동 극동방송 앞에 자리 잡은 푸드트럭 ‘라멘포장마차’의 최병석(24)씨도 밤 10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일본 라면 재료를 매일 60그릇 분량만 준비해 다 팔리면 들어간다. 그의 목표는 유학자금이다. 파전집 하는 어머니 덕에 일찌감치 음식 장사에 눈을 떴다. 외국에 나가서 일본 음식이 왜 통하는지, 이탈리아 음식을 왜 알아주는지 공부해보려고 이 트럭을 장만했다고 한다.

안씨와 최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열심히 활용했다. 페이스북에서 ‘오늘 정상영업 합니다’ ‘벌써 다 팔려서 들어갑니다. 감사해요’ 같은 글로 매일 손님들과 소통하는 식이다. 두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오늘 단속 나와서 도망쳐 있습니다’ ‘단속에 걸렸습니다. 옆 건물 경비아저씨가 여기서 장사하지 말라네요. 멘붕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했다. 가장 가시적인 결과물로 푸드트럭 합법화가 추진되고 있다. 안씨, 최씨 같은 이들에겐 반가울 소식인데 들여다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부 개혁안은 ‘유원지에서만 임대료 내고 영업하라’는 것이다. 도시의 푸드트럭은 여전히 불법이고 단속이 나오면 도망쳐야 한다.

최씨는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땐 이제 됐다 싶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목표가 있으니 어떻게든 장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푸드트럭 합법화는 점포상인 영업권, 노점상과의 형평성 문제가 얽혀 있다. 쉽게 풀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해줄 게 없지는 않을 것이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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