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유병언 구원파’를 해부한다] (1) 구원파의 역사·계보·교리

국민일보

[사이비 ‘유병언 구원파’를 해부한다] (1) 구원파의 역사·계보·교리

입력 2014-05-07 02:10 수정 2014-05-0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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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 받으면 어떻게 생활하든 관계없다”

반사회적 교리, 오대양·세월호 참사로 표출


세월호 참사의 배후로 지목된 기독교복음침례회(유병언구원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원파 탈퇴자와 이단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에는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유병언(73)씨의 구원파가 표방하는 반사회적 교리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지적한다. 7회에 걸쳐 구원파의 실체와 폐해를 살펴본다.

구원파는 유씨와 그의 장인인 권신찬씨에 의해 시작됐다. 권씨는 1923년 경북 영덕에서 출생했으며, 40년 일본 통신중학을 중퇴한 후 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51년 목사안수를 받고 대구·경북지역에서 목회를 했으나 62년 예장 통합 경북노회에서 신학사상이 정통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제명처분을 받았다. 유씨는 1941년 일본 교토 출생으로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했고 정통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

권씨는 61년 11월 자칭 네덜란드 선교사 길기수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씨도 61년 4월 자칭 미국 선교사 딕 욕에게 침례를 받고 ‘깨달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왜곡된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63년 이들 자칭 선교사와 관계를 끊고 서울 인천 안양 대구 등지로 세력을 확장했다.

두 사람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극동방송이었다. 권씨는 66년 2월 복음주의방송국(현 극동방송) 전도과장으로 취임했으며, ‘은혜의 아침’이라는 설교시간에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잘못된 교리를 전파했다. 유씨도 방송부국장으로 활동했으며, 매년 여름 청취자수양회 명목으로 서울 불광동 팀수양관에서 집회를 열고 정통교회를 맹비난했다.

구원파 문제가 교계에서 본격 제기된 것은 67년 4월 소모 강도사가 예장 통합 경안노회 소속 포항중앙교회에 부임하면서부터다. 소 강도사는 교인들에게 속칭 ‘깨달음의 교리’를 가르쳤고 교회 당회는 참석 집사들을 면직했다. 구원파는 극동방송을 앞세워 교인들을 미혹하고 신앙공동체를 분열시켰다. 이들은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다’ ‘성수주일(聖守主日), 십일조 강요는 율법적이다’ ‘교회에 안 나가도 어디에서나 하나님 모신 곳이 교회다’ ‘구원받은 사람은 기도가 필요 없다’ ‘새벽기도는 교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다’는 등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74년 권씨와 유씨의 이단 행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교계에서 일어났다. 기성과 예성 총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목포기독교협의회, 마포지구기독교교회연합회 등 지역교계는 물론 대한예수교협의회(KCC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한국기독교부흥사협의회에서도 구원파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비판이 빗발치자 팀선교회(한국복음주의동맹선교회) 회장이자 극동방송 국장인 우인철씨는 74년 9월 기자회견을 열고 “권씨는 비성서적·비기독교적이며 사기적 방법으로 극동방송을 지배하려 했다”면서 권씨와 유씨 등 10명을 해임했다. 극동방송 장악에 실패한 구원파는 74년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고 79년 ㈜세모를 설립해 선박제조, 건강식품, 자동차부품제조 등의 사업을 하며 신도들로부터 사업자금을 끌어들였다.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정통교회와 충돌을 빚던 구원파는 81년 서울 용산구 삼각지 서울교회당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꾼다.

한국사회에 구원파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사건이다. 당시 170억원의 사채를 빌려 쓴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오대양 사건의 핵심은 박순자씨였는데 그는 구원파 신도이자 유씨가 길러낸 사람이었다. 박씨는 유씨에게 사업자금을 대주던 핵심인사였고, 유씨는 오대양 관련 상습사기 혐의로 징역 4년 확정판결을 받고 91년 구속됐다.

96년 사망한 권씨는 유씨를 ‘몸의 입’ ‘기름부음 받은 자’로 추대했으며, 일부 신도들은 그를 ‘살아있는 예수’ ‘모세’ 등으로 추앙했다. ㈜세모의 해운사업부는 97년 부도를 낸 뒤 99년 유씨의 두 아들에 의해 설립된 지주회사 아이원아이홀딩스에 넘어갔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 등 30여 계열사가 이 회사에 소속돼 있다.

정동섭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는 “‘죄사함을 받으면 육신적으로 어떻게 생활하든 관계없다’는 잘못된 교리가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침몰사고로 표출됐다”면서 “시한부 종말론자들에게 나타나는 금품착취, 사기성과 이중성 등이 유씨의 행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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