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내가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솔직 대담 [인터뷰]

소지섭 “내가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솔직 대담 [인터뷰]

입력 2017-08-15 20:58 수정 2017-08-15 22:07
배우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제공

곧다. 단단하다. 겉과 속이 한결같다. 꾸밈이 없고,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다. 요동치는 내면을 굳이 드러내 보이지 않을 뿐. 무던하고 꼿꼿하다. 그러면서도 노련하고 진중하다. 고작 1시간 남짓한 대화에서 배우 소지섭(40)이 남긴 인상은 그렇게나 강렬했다.

그의 말들은 대체로 길지 않다.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렇다고 문제될 건 없다. 몇 마디 단문만으로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해내니까. 적당한 유머에, 상대를 대하는 진정성까지 갖춘 소지섭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배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어요. 지인들도 되게 신기해해요(웃음).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워낙 내성적인 편이고, 그냥 뒤에 있는 게 편해요. 한발 앞에 나가 있으면 되게 불편해요. 뒤에서는 뭐든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친구들은 여전히 소지섭에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얘기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 나와 말없이 구석에 가만 앉아있어도 그러려니 한다. “다들 익숙하니까요. 그게 제 모습이거든요. 오히려 제가 웃고 떠들면 ‘쟤 오늘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식이에요(웃음).”

배우 생활에 있어서도 그만의 확고함이 존재한다. 성공을 좇기보다 소신을 따른다. 작품이 좋다면 제작 규모에 상관없이 선뜻 손을 내민다. 그런 그에게 영화 ‘군함도’는 조금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여름 성수기 극장가를 장식하는 ‘텐트폴’ 영화에 출연한 게 처음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역사를 다룬 ‘군함도’에서 소지섭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종로 깡패 최칠성 역을 맡았다. 군함도에 끌려가 고초를 겪으며 제 살 궁리에 힘쓰지만 결국 조선인 탈출을 돕는 인물. 어느 때보다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촬영에 임했다.

그렇다고 실제 피해자들이 당시 느낀 감정을 짐작할 순 없었다는 게 본인의 말이다. 아무리 비슷한 공간에 있더라도 배우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 감정을 감히 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전 정말 모르거든요.” 참으로 소지섭다운 대답에 머리가 띵. 진정한 현답(賢答)이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군함도’ 개봉 이후 여러 반응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을 듯한데.
“저는 되게 현실주의거든요. 일단 개봉을 했으면 (관객들이) 말씀해주시는 건 다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거 나쁜 거 거르지 않고 일단 귀를 열어놓죠.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류승완 감독 이하 전 스태프·배우들 사이에 어떤 사명감과 공감대가 있었을 것 같다.
“군함도라는 세 글자가 주는 무게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초반엔 특히 배우와 스태프들이 너무 힘들어했어요. 이대로는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했어요. ‘전쟁의 폐해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자.’ 그렇게 생각하니 좀 편해졌죠.”

-소지섭이 그린 칠성은 어떤 인물이었나.
“감독님이 생각하신 정확한 느낌이 있어서 그 방향대로 만들어갔어요. 동물에 비유하면 호랑이 같은 느낌을 원하셨어요. 가만히 있을 땐 고독해 보이다가도 한번 움직이면 파워풀하고 에너지 넘치고 본능적인. 제가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많이 다르죠.”

-기존 캐릭터들은 주로 어떤 스타일이었는데.
“좀 차가웠죠. 말 없고 느릿느릿하고 감정 표현도 잘 안 하고. 반면 칠성은 생각이 거의 없어요. 본능적으로 튀어나가죠.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속 시원하더라고요(웃음).”

-1995년 청바지 브랜드 스톰 모델로 데뷔해 1997년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가치관이 바뀐 계기가 궁금하다.
“연기가 재미있어진 건 ‘발리에서 생길 일’(SBS·2004) 때부터였어요. 카타르시스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 이게 뭐지? 되게 재미있는데?’ 그 이후로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다음 작품이 ‘미안하다 사랑한다’(KBS2·2004)였는데, 그래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솔직히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니까 했었죠.”

-어떤 지점에서 재미를 느꼈던 걸까.
“그냥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뭔가가 딱 오니까 정말 앞만 보고 꽂히는 거죠.”


-그런 쾌감이 매 작품마다 느껴지진 않을 텐데.
“(연기한지) 이제 20년 됐잖아요. 그러긴 힘들어요. 나도 모르게 자기복제가 많아지거든요. 새로운 걸 찾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제 안에 있는 건 이미 다 보여줬잖아요. 그럼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어디서 얻어 써야 해요. 에너지를 채울 시간 없이 연기를 하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때 슬럼프도 왔었고요.”

-언제쯤 슬럼프를 겪었나.
“2014년 ‘18 Years’라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였어요.”(*이 곡에는 이런 가사가 실려 있다. ‘18년 동안 웃는 얼굴만을 원해/ 18년 동안 내 맘은 울고 있어 몰래/ 18년 동안 난 혼을 파는 광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더 지쳐갔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네.
“그죠. 그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어요. 아마 평생 하겠죠. 제가 연기를 하는 한 계속할 것 같아요. 저는 어깨에 뭔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요. 뭔가 고민거리를 계속 줘야 돼요.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또 생기거든요.”

-연예계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적이 많았겠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었을 테고.
“사람이 살면서 좋아하는 일만 있을 순 없잖아요. 그만한 대가가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요? 결국 해야 될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죠. 좋아서 하는 일은 뒤에서 (따로) 하는 거고.”

-인생사 거의 모든 것에 초연한 느낌이다(웃음).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스트레스를 안 받고 싶거든요. 이거 하나로도 너무 커서…. 저만의 방식인 것 같아요. (연기에) 너무 힘들게 다가갔기 때문에 다른 건 될 수 있는 한 편하게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

-연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래야만 (제가) 연기를 하나 봐요. 너무 쉽게 가려 하면 여태까지 늘 해왔던 방식으로만 접근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슬럼프가 왔었고.”


-고단했을 배우의 길,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그건, 찾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51이란 숫자를 되게 좋아하는데요. 51%가 좋은 것 같아요. 49%는 분명히 싫어요. 그러니까 지금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은 다 49%인데 연기는 51%거든요.”

-그 기준이 무너져버리면 어떡하나.
“무너지면 그만하겠죠. 저는 연기만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한 사람이라, 항상 다른 데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거든요. 마음의 준비를 늘 하죠. 그래야 숨을 쉬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힙합’이라는 돌파구는 어떻게 찾게 됐나.
“이거 얘기가 긴데…(웃음). 중학교 2학년 때 MC해머와 듀스 노래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고(故) 김성재씨가 메인 모델이었던 스톰이란 브랜드에 서브 모델로 지원했다가 이후에 제가 메인 모델이 됐죠. 어떻게 보면 힙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묘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는 주어진 대사를 하는 사람이고 가수는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인데, 그런 다른 매력이 또 있더라고요.”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팬들에게도 또 다른 행복이 된 것 같다.
“나만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팬들이) 포기해서 ‘그래, 네가 좋으면 해’가 된 건데, 그전까지는 많이 싫어하셨거든요.”

-지금은 다들 좋아하지 않나. 소신 있다는 반응도 있고.
“그러기까지 되게 오래 걸렸어요. 앨범이 한 9장 나왔거든요? 본인들도 인정하기가 쉽진 않았을 거예요. 아직 인정 안 한 것 같기도 하고(웃음). 어쨌든 공연 오시면 되게 즐겁게 같이 놀아주세요.”

-본인이 정말 행복해하는 일을 찾은 셈이네.
“그렇죠. 저는 저를 지켜봐주시는 팬들 앞에서만 (랩 공연을) 하거든요. 다른 데에선 절대 안 해요. 팬들을 한번 만나면 에너지가 장난 아니게 생겨요.”


-왜 공개적인 공연은 꺼리는 건가.
“일단 그만한 실력도 안 되고요.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지도 않아요. 스트레스 안 받고 싶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과 같이 놀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제가 ‘취미’로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굉장히 잘못된 접근 방법이거든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거지, 절대 취미라고 할 수 없어요.”

-다시 ‘18 Years’ 얘기로 잠깐 돌아가 보면, ‘솔직한 나를 찾고 싶다’는 가사가 눈에 띈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찾고 있어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판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알아가는 과정이죠. 아마 흙으로 돌아갈 때도 모를 걸요?”

-연예계 생활을 꽤 오래했는데 가십이 별로 없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죠.”

-그만큼 본인을 꽁꽁 싸매고 지낸다는 뜻일까.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해요. 그러고 싶어요. 저는 거짓말 하면 티가 나서 잘 못하거든요.”

-정말 그렇다. 평소에도 솔직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것 같다.
“가끔은 그러지 말라는 얘기도 들어요(웃음). 근데 솔직한 게 편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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