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입대하는 ‘최종병기’ 이영호 “보는 재미,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최고”

[인터뷰] 입대하는 ‘최종병기’ 이영호 “보는 재미,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최고”

입대 앞두고 “복무 마치고 스타 방송 계속 하고파”
“랜덤 출전 매우 만족, 이제동과 치열했던 시절 그리워”
“페이커, 게임에 푹 빠진 대단한 선수”

입력 2021-05-05 16:28 수정 2021-05-06 10:31
지난달 29일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에서 이영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민석 기자

‘스타크래프트’계에서 ‘최종병기’로 통하는 이영호(28, 사진)가 6일 입대한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e스포츠 대회에서 임요환, 이윤열 등 프로씬의 초석을 다진 선배들에게 바통을 이어 받아 역사상 가장 화려한 대회 커리어를 쌓은 프로게이머다. 2007년 앳된 모습으로 처음 프로 무대에 선 이영호는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판단,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통산 승률 70%를 훌쩍 뛰어 넘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팀이 0대 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덤덤히 출전해 숱하게 역스윕을 해내며 ‘최종병기’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이영호는 2011년 오른팔 수술을 받는 어려움 속에서 꾸준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다가 2015년 12월 프로 생활을 마치고 인터넷 방송인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5년 3개월간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프로 때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성수동 자택에서 만난 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가 ‘보는 재미’에서 여전히 최고라며 해맑게 웃었다. 군 입대를 앞둔 그에게 프로게이머와 방송자키(BJ)로 활동한 소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전역 후 계획 등을 물었다.

-근황은 어떤가.
“일을 안 쉬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최근에는 처리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인과 저녁 자리를 자주 갖고 있다. 프로게이머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과 BJ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을 주로 만난다. 글로벌오더 서현민 대표와 최근 가깝게 지내고 있다. 바로 위층에 산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더 친해졌다. 거의 매일 보는 거 같다.”

-팬들이 수술한 팔 걱정을 많이 한다.
“팔은 계속 안 좋다. 쉬면 조금 낫긴 한데 더 좋아지긴 어려운 상태다. 다른 건강은 대체로 괜찮다.”

-나이를 꽉 채워 입대하는데 걱정은 없는지.
“현역 분들에 비해서 몸이 힘들거나 그런 건 없어서 크게 걱정은 없다. (※주: 이영호는 오른쪽 팔 신경 감압술 등의 사유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역한다.) 1년 9개월의 복무 기간 동안 (방송을 통해) 게임을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힘들 뿐이지 그 외엔 걱정이 없다. 복무 기간 동안 한 번씩 목소리 정도로만 팬들께 인사드릴 생각이다.”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제동이형과 라이벌 관계일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는 우승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대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제동이형과 치열했던 그 시절이 그립게 느껴진다. 어제는 유튜브로 부산 광안리에서 제가 팀 우승을 이끄는 영상을 봤는데 감회가 새롭더라.”


-가장 아쉬웠던 경기를 떠올린다면.
“택용이형과 프로 리그 결승 ‘에이스 결정전’이 떠오른다. 최근 영상도 찾아봤다. 마린으로 상대 언덕 뒤를 잡았는데 ‘시타델 오브 아둔’을 한 대만 때리면 되는데 못 깨서 발업 질럿에 밀렸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되게 간발의 차이였다.”

-‘택뱅리쌍’ ‘리쌍록’ 등은 지금도 회자되는 라이벌이다.
“택뱅리쌍이 한창 유행을 탔던 게 2008년쯤이었던 것 같다. 시기별로 다른데 제동이형이랑은 항상 치열하게 싸웠다. (김)택용이형이랑도 많이 싸웠는데 대체로 제가 많이 이겼다. 택용이형이 흔들기를 잘하는데 제가 잘 막는 스타일이어서 상극이었던 거 같다. (송)병구형한텐 제가 초기에 많이 졌다. 캐리어를 정말 잘 썼는데, 나중에서야 극복한 케이스다. 제동이형도 비슷하다. 초반에 많이 졌는데 2010년 이후 극복한 거 같다. 큰 경기 땐 제가 이기고, 그러다가 또 단판 경기에선 제동이형한테 지고 그랬다.”

-많은 이들이 ‘스타크래프트’를 가장 잘했던 선수로 이영호를 기억하고 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지는 게 정말 싫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는 게 죽는 것만큼 너무 싫었다. 지면 그보다 더 허탈한 것도 없었다. 승부욕이 센 만큼 연습량이 굉장히 많았다. 자기 전까지 스타크래프트 생각만 했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을 쌓고 배워가면서 나중엔 완전체 느낌으로 게임을 했던 거 같다.”


-다른 종목이지만, LoL 최고의 자리에 오른 ‘페이커’ 이상혁도 인터뷰를 해보면 게임밖에 모르고 승부욕이 강한 인상이다. 닮은 점이 있는 거 같다.
“페이커 선수는 예전에 행사장에서 가끔 봤다. 게임에 푹 빠져있는 대단한 선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LoL은 단체전인데도 오랜 시간 롱런하는 게 인상 깊다. 스타성도 뛰어나다. 제가 듣기로 ‘페이커’ 선수가 용돈을 타서 쓴다고 하더라. 저도 선수 시절 높은 연봉을 받아도 용돈 타서 썼다. 그게 좋은 거 같다. 게임만 할 수 있고, 나중 가면 게임에만 집중했던 보상이 더 크게 돌아온다. 업계 관계자들도 좋게 봐주신다.”

-이영호만이 깨달은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비결이 있을까.
“스타크래프트는 바둑과 비슷하다.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이 판단이 맞나’라는 생각을 한 게임에서 몇 백 번 하는 거 같다. 저는 그 가운데 이길 수 있는 확률을 연습량과 대회 경험 같은 걸로 많이 올렸다. 애매한 상황이 10번 있었다면, 나중엔 5번으로 줄였다. 점점 제 판단에 확신이 들었다. 실제 판단 싸움에서 많이 이겼다. 연습량이 많았지만 특히 대회에서 졌을 때를 안 잊었다. VOD를 안 봐도 될 정도로 인구수까지 기억했다. 그렇게 변수를 줄여 나갔던 게 저만의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패배할 때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
“프로 아닌가. 졌을 때 욕먹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거다. 선수 입장에서 화가 날 순 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깐. 사람이다 보니 감정이 한 번씩 무너진다. 숙명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로 활동할 당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진 취미가 있었나.
“영화를 정말 많이 보고 그 외에 먹는 거로 많이 풀었던 거 같다. 저는 몇 시간 지나면 까먹어서 스트레스에서 잘 벗어난다. 경기에서 진 날은 엄청 예민한데 다음날 되면 괜찮아졌다.”

-마지막 출전 대회를 랜덤으로 나갔다.
“늘 다음 시즌을 흥행시킬만한 게 없나 고민하다가 확실한 동기부여를 위해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다음 시즌 랜덤으로 나가겠다’고 질러버렸다. 이후 9개 종족전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면서 다른 종족 선수들의 대단함을 느꼈다.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한동안 안 보셨던 분들도 제가 랜덤으로 출전한다고 해서 꽤 보셨다고 하더라. 제 목표는 이룬 것 같고 너무 만족스러웠던 시즌이다. 제 게이머 생활을 통틀어 제일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비록 우승은 못 했지만 랜덤으로 4강에 갔다는 게 정말 좋았다.”

-랜덤을 해보니 어느 종족이 제일 좋은 것 같나.
“테란은 제가 항상 했던 종족이니깐 아무래도 쉽지 않겠나. 저그, 프로토스는 정말 어렵더라. 반대로 테란을 상대할 때 너무 세 보일 때가 많았다. 지금껏 제가 테란을 해서 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른 종족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랜덤으로 준결승까지 가는 건 저밖에 할 수 없다고 자부한다. 이후 ‘테란이 사기다’란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없어졌다. 사실 ‘테사기’란 말도 재밌다고 생각한다. 많이 유쾌해졌다.”

-이영호가 생각하는 테란의 유불리는 무엇인가.
“테란은 새 맵이 나왔을 때 상성이 안 좋아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종족이다. 그래서 항상 중간은 간다. 저그와 프로토스는 좋고 안 좋고가 확 갈린다. 저는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방어를 해야 하는데, 요새 트렌드에서는 방어만 하는 건 좋지 않다. 테란도 공격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저그랑 하면 계속 두들겨 맞는다. 테란은 눈치가 빠르고 판단만 정확히 내릴 수 있으면 강하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하기엔 어렵다. 테란 하는 일반 유저는 거의 없고 프로토스를 많이 하더라.”


-방송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프로들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건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일단 게임이 전보다 쉬워진다. 가령 누구를 상대로 되게 어려웠는데, 갑자기 게임이 쉬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 저는 게임 내적으로 무언가가 바뀌었다기보다 스스로 큰 자심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그때 큰 벽을 허물었다. ‘뿅’ 하고 반짝하고 뜰 때가 있다.”

-인터넷 방송을 약 5년 3개월간 했다. 소회를 말해 달라.
“실시간으로 욕을 먹는다. 일단 게임 지고 욕까지 먹으니까 힘들다. 한편으로 멘탈이 세지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선수 때는 내 기분 가는 대로 했는데 개인 방송을 하면서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또 선수 때는 자유롭지 못했는데 BJ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선수 시절의 영광이 그리운 거지 생활이 그립지는 않다. 합숙하다보면 감독님, 코치님이 설계해준 대로 움직여야 하니까. 지금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 행사도 제 마음대로 일정을 잡으니까 편하다. 일정 관리 혼자하는 건 불편하지만 그래도 재밌게 살고 있다. 살도 그래서 많이 쪘다.”

-선수 시절의 팬과 방송인으로 활동할 때의 팬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선수 때는 여성 팬도 많았고, 조금 충성도가 높았던 것 같다. 선수 때는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 팬들은 실시간으로 소통하다 보니까 친구 같은 느낌이다. 팬이라기보다는 친구, 동반자 느낌이 강하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언제까지 갈까.
“예전 전성기에 비하면 하시는 분들이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보는 재미’는 스타크래프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이 나이가 들었지만 게임을 못하지 않는 한 이 게임은 계속 가지 않을까 싶다. 저는 게임을 못하게 되어도 계속 대회나 방송을 볼 거다. 명경기가 나오는 재밌는 게임이 실제 많지 않다.”

-e스포츠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저는 e스포츠가 스포츠를 뛰어넘을 거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식적으로 많이 좋아졌지만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지금 방향을 잘 잡고 나가고 있는 거 같다. 짧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게임단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어떤 게임단은 웬만한 야구단과 비교해도 안 밀린다고 하더라. 저도 어디 가서 ‘프로게이머 이영호’라고 하면 인정을 받고 믿어주더라. 이후 10년을 보더라도 그 이상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올 거다. 유능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더 재밌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커진 e스포츠 판에서 프로로 활동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는지.
“그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데 솔직히 그렇지 않다. 게이머로서 은퇴한지 5년이 넘었는데 은퇴 후 생활이 정말 좋았다. 금전적으로도 프로 때보다 훨씬 많이 벌었고 인맥도 잘 쌓았다. 더구나 제가 프로로 활동할 때 선배들이 다져놓은 판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걸 토대로 아프리카나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저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제 삶에 정말 만족한다. 지금 프로로 활동하는 후배들이 잘된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앞으로 더 잘됐으면 좋겠다.”


-전역 후의 계획은?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계속하고 싶다. 저는 돈을 충분히 벌어도 스타를 평생 하고 싶다고 항상 얘기한다. 팬들과 소통하면서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아직 말씀드리긴 시기상조 같다. 나중에 준비가 되면 말씀드리고 싶다. ‘최초’란 말을 좋아해서 e스포츠계에 남기고 싶은 게 있다. e스포츠에 애정이 많고 저를 먹고 살게 해준 게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개인 방송인이 아닌 업계인으로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 지금까지 여러 제의를 받았지만 군 복무도 안 한 상황이라 거절했다.”

-한때 ‘빠른 무한’ 맵에서 일반 플레이어와 치열하게 대결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다시 만나면 이길 수 있을까.
“정말 재밌게 했다. 다시 만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팔이 아파서 게임을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빠른 무한맵이 팔이 더 아프다.”

-젊음을 게임에 불살랐는데 못해봐서 아쉬운 게 없는지.
“대학생으로 학교를 다녀보지 못한 게 아쉽다. MT도 못 가봤다. 그런 거 말고는 원채 ‘집돌이’다. 제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살고 있다. 나중에 좋은 집에 컴퓨터 5대 놓고 친구들과 과자 먹으면서 게임을 해도 즐거울 거 같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군 복무 잘 하고 1년9개월 뒤에 다시금 게임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개인적으로 방송 못 하는 게 답답해서 걱정이다. 팬분들도 아쉬우실 거다. 그래도 현역이 아니니 퇴근하고 게임할 수 있다. 실력 유지해서 1년9개월 뒤에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이다니엘 윤민섭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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