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들었어요’…등록금보다 비싼 재수학원비 [이슈&탐사]

‘2000만원 들었어요’…등록금보다 비싼 재수학원비 [이슈&탐사]

[조국 사태 2년, 대입은 공정해졌나] ④ 재수도 돈의 경쟁

입력 2021-11-19 00:07 수정 2021-11-21 17:19
한 수험생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학 1학년인 박병준(20)씨는 ‘실패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지난해 대입 재수를 했다. 부모가 서울 강남 재수종합학원에 매달 낸 학원비는 약 250만원. 교재비, 교통비를 더하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갔다. 부모는 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박씨 스스로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재수 기간 성적이 올라 박씨는 서울의 한 대학 공대에 합격했다. 재수 비용이 값어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고3 때보다 좋은 학교에 붙었으니 비싸다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N번째 대입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재수생이 주로 노리는 정시 전형은 대부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 반영된다. 수능은 사교육을 많이 받으면 유리한 시험이다. 재수생이 여러 학원으로 몰리는 이유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대입 정시 비중 확대로 재수 시장에서 사교육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시 비중 확대가 수험생 부모의 경제력 격차에 따른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김모(20)씨도 인천 연수구에서 서울 강남 재수종합학원을 오가며 재수를 했다. 매달 220만원을 학원에 냈다. 코로나19로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됐을 땐 10% 할인을 받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연수구에서 강남까지 광역버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재작년 고3 때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면서 들어간 학원비는 월 90만원 남짓. 재수 때 정시로 대학을 가기로 전략을 바꾸면서 사교육비가 훌쩍 뛰었다.

대부분 재수종합학원의 1년 학원비는 대학 등록금보다 2배 이상 많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유명 재수종합학원 5곳에 문의한 결과 학원비는 월평균 180만원이었다. 급식비, 독서실비 등만 포함된 비용으로 모의고사비나 교재비는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모의고사는 1회 1만5000~3만원, 교재비는 2~3개월에 30만원이다.

10개월을 다닐 경우 2000만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신입생은 올해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쳐 평균 764만원을 냈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더 많은 학원비를 받는 재수종합학원도 있다. 2019년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흥행 이후 등장한 A학원은 다른 학원의 1.5배 수준인 매달 290만원을 ‘회원비’로 받는다. 이런 학원들은 급식을 유기농 식단으로 짜고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수험생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이가 재수하면 엄마는 징역 10개월에 벌금이 4000(만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험생들이 18일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건 기숙재수학원이다. 수도권 근교에 자리한 기숙사에 거주하며 재수종합학원을 다니는 방식의 기숙재수는 매달 약 3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학원 유니폼비, 교재비 등은 별도다. 대학생 장현제(20)씨는 지난해 재수종합학원을 7개월 다닌 뒤 수능을 앞두고 2개월간 기숙재수학원에서 공부했다. “기숙학원 비용이 한 달에 330만원 정도 들었어요. 상·하의 합쳐 10만원 하는 유니폼도 2벌 구매했네요.”

기숙사에서 독학재수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독학기숙학원도 있다. 독학기숙학원 학원비는 의무 강의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1주 21교시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하는 B학원은 한 달 278만원, 필수 강의가 없는 C학원은 한 달 169만원이었다.

'나홀로 재수'도 월 100만원 있어야
‘나홀로 재수’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올해 서울의 한 대학 의대에 합격한 심모(20)씨는 지난해 독학재수학원에 다니며 입시를 준비했다. 독학재수학원은 수험생이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도록 공부 시간을 관리해준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스스로 학습계획을 짤 수 있어 재수생에게 인기다. 심씨는 이곳에서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저는 재수할 때 돈 많이 안 썼어요. 가성비 있게 재수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급식비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100만원이 들었다.
한 수험생이 18일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취재팀이 서울 강남 목동 송파 등에 위치한 독학재수학원 4곳에 확인해보니 한 달 학원비는 평균 58만8000원이었다. 여기에 끼니당 5700~5900원의 급식비가 더해지면 최종 비용은 월 80만원대다.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고 독재학원 지정석에서 공부만 했을 때 드는 비용이다. 인터넷강의 수강과 입시 컨설팅 비용을 고려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대학을 다니면서 대입을 다시 치르는 ‘반수’를 하면 재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한두 학기 등록금을 날리게 된다. 박모(20)씨는 지난해 경기도 한 대학에 입학한 뒤 독학재수학원에서 재수해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학원비 교통비 식비를 합해 매달 들어간 돈은 90만원.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 컨설팅에도 수십만원을 냈다. 그는 “사교육비가 재수기간 중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 외동도 아니고, 1학기 등록금 300만원을 내고 반수를 했거든요.”

교육 전문가들은 수시 전형뿐 아니라 정시도 부모의 재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교육 공익단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김태균 정책팀장은 “수능은 객관성을 갖춘 시험이지만 동시에 부모의 경제적 배경이 투여된 시험”이라며 “학생부종합전형에 부모 배경이 반영됐다고 얘기하지만 수능도 가정 배경이 여실히 반영된 시험제도”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년에 60만~70만원을 내면 모든 과목의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인강 프리패스권’이 등장하면서 재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터넷 강의만으로 N번째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연구소장은 “요즘 수험생들은 재수종합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필요하면 인터넷 강의도 듣고 단과 학원도 다닌다. 한 과목에 투자하는 게 예전에 비해서 많아졌다”고 말했다.

"재수 감행할 돈 있는 집은 한정"
이런 ‘돈의 경쟁’에서 비수도권 수험생은 불리한 위치다. 비용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어도 사교육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이를 이용하려면 서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 존재하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배들의 입시 결과를 본 학생들은 수도권 사교육을 훨씬 선호한다. 우연철 진학사 수석연구위원은 “소위 ‘일타 강사’는 주로 수도권에서 현장 강의를 하고 지방에서는 일회성 특강을 진행하죠. 그래서 인강이 있어도 서울로 오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수험생들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18일 서울 여의도고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주 D고 3학년생인 최도훈(18)군은 지난 18일 치른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재수를 위해 서울로 갈 생각이다. 친형이 서울 유명 재수학원에서 공부한 뒤 의대에 진학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서울 입시 학원가에는 비수도권 출신 재수생을 위한 학사와 고시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부 학원은 이들과 제휴를 맺어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E독학재수학원은 홈페이지에 ‘학사·고시원 10% 할인’ 이벤트 공지사항을 올렸다. 10% 할인을 받아 거주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고시원은 한 달 방값 35만원, 저렴한 학사는 한 달 70만원이다. 가장 저렴한 고시원에서 살면서 E학원에 다니면 90만원, 학사에 살면서 다니면 125만원이 든다.

세종시에 살며 주말마다 서울 대치동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고교 3학년생 김모(18)군도 상경 재수를 고민 중이다. 그는 지난 6월부터 매주 주말 영어와 논술 수업을 듣기 위해 대치동을 찾았다. 김군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더 일찍 올라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3월부터 다니지 않은 걸 되게 후회하고 있어요. 분위기가 달라요. 재수하면 서울에서 할 것 같아요.”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가 대학수능시험이 치러진 18일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 수능 분석 상황실에서 시험 난이도 평가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김군이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영어·논술 학원비 75만원과 고속버스 비용 25만원을 합쳐 매달 약 100만원이다. 친구들은 한 달 학원비로 30만~40만원을 쓴다. 그는 사업을 하는 부모에게 학원비가 큰 부담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군과 같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N수생의 삶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엄수정 경기도교육원 부연구위원은 “돈을 내면 원하는 것을 구입한다는 착각이 들게끔 사교육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그걸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면서 “재수를 감행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이 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박세원 이동환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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