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번지는 집에 들어가…96세 노인 구해 [아살세]

국민일보

불길 번지는 집에 들어가…96세 노인 구해 [아살세]

입력 2021-12-29 00:03 수정 2021-12-29 00:03
신씨가 할머니를 구한 화재 현장 불에 타들어가는 주택 모습. 영월소방서 제공

“불난 집을 보고 신고했더니 소방관이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부탁하더라고요. ‘아차!’ 싶어 불길이 번지는 사이 사람을 찾아 헤맸습니다. 고민할 겨를은 없었어요.”

불난 집 안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어 96세 할머니를 구한 신영선(47)씨가 2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이야기입니다.

신씨는 지난 10월 1일 부인과 함께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발견했습니다. 즉각 근처 소방서에 신고한 그는 소방관이 출동하기 전 집 안에 홀로 남겨져 있던 할머니를 업고 나왔습니다. 신씨는 귀한 생명을 구한 공로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관하는 ‘2021 생명존중대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묻자 신씨는 “새벽 1시가 되기 직전이었고, 하늘에선 비가 오다 말다 하고 천둥과 번개가 치던 상황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날씨 탓에 낚시를 그만두고 강가에 친 텐트에 들어가 부인과 철수할지 말지를 의논하다 텐트 문을 열고 나왔는데 150m 정도 떨어진 언덕의 주택에서 연기가 가득 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일단 119에 신고부터 한 신씨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인지 정확지 않아 가까이 찾아갔습니다. 연기만 나는 것인지 불도 났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신씨가 연기가 나는 곳 50m 정도 앞까지 다가섰을 때 불은 놀랄 정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전지대에서 본 영월군 산골 주택 화재의 연기 모습. 신영선씨 제공 동영상 캡처

다급해진 신씨는 다시 119 구조대에 전화했지만, 출동한 소방대가 도착하기까지 5~1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집에 있는지 확인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신씨는 “아차, 사람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신씨는 곧장 불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아무도 안 계시냐’고 계속 소리쳤습니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절반쯤 타들어 가던 집에서 나오려는 순간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할머니가 문고리를 잡고 힘겹게 앉아 계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는 사실상 탈출을 포기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신씨는 “못 걷는다는 말씀에 발이 아파서 그러나 생각해 신발을 벗어드렸다”며 “5m도 채 못 걷자 아내가 ‘할머니를 업어야 할 것 같아’라고 소리쳤고 곧바로 할머니를 업은 채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회고했습니다.

신씨가 할머니를 구한 화재 현장 불에 타들어가는 주택 모습. 영월소방서 제공

말 그대로 불타는 집에서 생면부지의 할머니를 업고 맨발로 자갈밭을 30m 정도 걸어 집을 빠져나온 것입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부인 박복자씨는 남편과 할머니가 집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물 묻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고 합니다.

신씨는 “할머니를 구해서 빠져나온 게 3~4분 정도였는데 30분이 훌쩍 지난 것처럼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며 “발도 무지하게 아팠다”고 전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전해 보이는 곳에 도착해서야 신씨는 자신의 옷을 벗어 깔고 할머니를 앉혀 드렸습니다. 그는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숨을 편안하게 쉬시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저 멀리 불타는 집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아이고, 이불이라도 하나 가지고 나올걸”이라며 속상해할 때도 “내 이불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할머니와 대화하며 안심시키는 신영선씨, 할머니를 감싸안아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는 신씨의 신발을 신고 있는 할머니. 신영선씨 제공 동영상 캡처

5분여 뒤 소방차 1대와 소방관 1명이 도착했습니다. 신씨는 다른 소방관들이 더 오기 전까지 소방관을 도와 소방 호스를 같이 잡고, 뒤에 오는 소방차를 인도하는 등 보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발을 다쳤던 신씨는 사흘 뒤에야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불난 집에 뛰어들었던 터라 유독가스를 마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지만, 다행히 건강하다고 전했습니다.

신씨는 ‘내 목숨이 위험할지 모른단 생각은 안 했느냐’는 질문에 “그걸 먼저 생각했다면 어떤 사람도 그런 행동을 못 할 것 같다”며 “나중에 보니 집사람이 ‘자기가 잘못되면 어떻게 할 뻔했느냐’며 엄청 울더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부인 박씨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같이 안전지대로 나오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는 자기 없으면 못 산다’면서 울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무모하게 뛰어든 남편이 그래도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다시 태어나도 남편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 상황에서 불이 난 주택에서 연기가 이는 모습. 신영선씨 제공

신씨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누차 강조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한 것이라며,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누구나 했을 것이라는 신씨의 말과 달리 타인을 위해 위험에 뛰어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요즘 시민 의식이 많이 높아졌어요. 주변에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는 신씨와 같은 숨은 영웅들의 존재가 이 연말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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