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가 피해 조종간 놓지 않았던 10초…아들에겐 당연했을 선택”

국민일보

[단독] “민가 피해 조종간 놓지 않았던 10초…아들에겐 당연했을 선택”

입력 2022-01-23 14:08 수정 2022-01-23 15:59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전투기 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29)이 중위 시절 자신의 주기종 F-5E에 탑승한 모습. 유족 제공

아들에겐 10초가량 시간이 있었다. 10초는 조종사가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

그러나 아들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비행자동 기록 장치엔 아들이 조종간을 붙잡고 가쁜 호흡을 하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생사를 가른 10초. 아들은 관제탑과 교신에서 두 차례 ‘이젝트(Eject·탈출)’를 외쳤다.

그러나 민가 쪽으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야산 쪽으로 기수를 돌리다가 비상탈출 시기를 놓친 것으로 공군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F-5E 전투기 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29). 그는 임무를 위해 경기 수원기지를 이륙하던 중 기체 고장으로 순직했다.

국민일보는 23일 심 소령의 부친 심길태(66)씨와 큰누나 심정희(39)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부친 심씨는 “정민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을 했을지, 그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심씨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늘 바르게 커왔던 아들이라 어쩌면 당연했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심씨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천국에서 정민이와 다 같이 만날 수 있다는 소망으로 가족들도 씩씩하게 살고자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심정민 소령(29)이 2017년 12월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고등비행교육과정 수료식을 마치고 부모님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유족 제공

“어머니 아버지, 전 이제 나라의 아들이에요”

심 소령은 부모에게 늘 대견한 아들이었다. 부친 심씨는 “늘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던 의젓한 늦둥이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굳은 마음은 추락 순간에도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는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심씨는 2021년 3월 제69기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당시 심 소령이 F-5E 기종으로 대표 비행하는 모습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다. 심씨는 “가족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심 소령은 2012년 공사 64기로 입학했지만, 다섯 기수 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상공을 나는 대표 비행을 한 것이다.

큰누나 정희씨는 “(심 소령이) 대표 비행을 미리 말도 안 해주고, 비행 전날이 돼서야 가족들에게 알려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라며 “정민이는 ‘어쩌다가 비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비행 모습을 방송으로 보았을 때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부모가 강조한 ‘겸손함’은 심 소령의 삶에 그대로 드러났다. 정희씨는 “지난해 호국훈련 유공으로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도 최근 사고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학창시절부터 각종 상장을 많이 받아왔는데, 자랑 한번 하지 않고 가방 속에 넣어뒀다가 가족이 발견하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부친 심씨는 심 소령이 공사에 입학한 뒤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 아버지, 전 이제 나라의 아들이에요.”

고(故) 심정민 소령이 2021년 3월 제69기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당시 F-5E 기종으로 대표 비행하는 모습. 부친 심길태씨는 심 소령의 전투기에 동그라미로 표시해 둔 캡처를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두었다. 유족 제공

“명예로운 대한민국 조종사로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

심 소령이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간 것은 공사 생도 시절부터였다.

심씨는 “(심 소령이) 어렸을 땐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며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공사에 입학한 이후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이어 “빡빡한 생도 생활에도 집에 오는 주말이면 항상 두꺼운 책들과 노트, 각도기 등을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하고 체력단련도 꾸준히 했다”며 “시력도 중요하다며 눈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당근을 갈아 마시는 등 눈 관리에도 철저했다”고 기억했다.

대구 출신의 심 소령이 “표현이 서투른 경상도 남자였다”고 누나 정희씨는 표현했다.

그러나 고된 교육 과정을 마치고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을 때의 기쁨만큼은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누나 정희씨는 “정민이가 지난해 초등학생 조카의 ‘직업 인터뷰’ 숙제를 해주면서 ‘꿈꾸던 목표를 이루고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 너무 보람차고 행복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정희씨는 이어 “(심 소령이) ‘비행 중엔 늘 긴장하게 되지만 안전하게 비행하고 착륙했을 때, 오늘도 대한민국 하늘을 지키는 임무를 완수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를 때가 자주 있다’고 내게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심씨는 “이젠 정민이가 우리 가족만의 아들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많은 분의 마음속에 기억됐으면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 잊혀 지겠지만 명예로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23일 고(故) 심정민 소령(29)의 수원 신혼집 자택에 놓여 있는 '조종사 2기 리더' 임명장의 모습. 유족 제공

“사고 기종은 노후 기종…이번 사고가 변화의 계기 됐으면”

유족은 심 소령과의 추억을 하나둘 모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나 정희씨는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누나들에게 말대꾸 한번 한 적 없었던, 오히려 누나들이 때로 마음을 기댈 정도로 생각이 깊고 착한 동생이었다”며 “표현은 서툴러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가족끼리 자주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 제주도에서 가족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그때가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라도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참 감사하고 소중한 추억”이라고 전했다.

심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아들인지라 이곳에서의 짧은 삶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며 “매일 아침 가족 단톡방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이야기하며 지냈던 시간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말했다.

유족은 군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특히 심 소령의 주기종이었던 F-5E는 1970년대 도입돼 노후 기종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

유족은 “해당 기종을 주기종으로 하는 조종사들과 그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민이의 사고는 우리 가족에게 평생 가슴에 남을 슬픈 일이지만, 이 사고가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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