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 넣어야 큰돈 번다’ 한탕주의, 역대급 횡령 불렀다

국민일보

‘큰돈 넣어야 큰돈 번다’ 한탕주의, 역대급 횡령 불렀다

수서경찰서, 계양전기 직원 체포
6년간 245억원 횡령 혐의
오스템임플란트·강동구청 횡령범
주식·코인 투자 공통점

입력 2022-02-17 18:32 수정 2022-02-17 18:43

2215억원, 115억원, 245억원. 지난해 12월 이후 매월 발생한 횡령 사건은 일단 규모 면에서 대담하다. 횡령액 상당수를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에 투자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최근의 자산 투자 열풍 속에 공금을 빼돌려 수익을 얻은 뒤 돌려놓으면 된다는 식의 ‘한탕주의’ 유혹이 범행의 배경이 됐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계양전기 재무팀 직원 30대 김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그는 재무팀에서 일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6년 동안 은행 잔고 증명서에 맞춰 재무제표를 꾸미는 수법으로 24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회사 자기자본(1926억원)의 12.7%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는 회사에 빼돌린 돈을 주식·가상화폐 투자, 도박에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6년간 지속된 김씨 범행이 회계감사에서 적발된 건 지난해 횡령 규모가 부쩍 커졌던 영향이 크다. 계양전기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횡령액이 비교적 소액이다보니 본인이 장부를 맞출 수가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속일 수 없는 단계로까지 간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양전기 사건은 지난해 12월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 직원의 2215억원 횡령 사건, 지난달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의 115억원 횡령 사건과 닮아 있다. 전문가들은 세 사건이 ‘빚투’(빚내서 투자) 등 자산시장 투자 열풍이 우리 사회를 휩쓴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주식을 통해 확실히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시장의 신호가 횡령 범죄를 저지르던 이에게 그 금액을 더 늘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선 두 횡령 사건도 범행은 주로 주식시장이 ‘불장’이었던 2020~2021년에 집중돼있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피고인 이모(45)씨는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투자에 넣었다. 강동구청 횡령 사건의 김모(47)씨도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구청 폐기물처리시설 설치기금을 빼돌려 주식투자에 썼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더는 직장생활로 자산을 불릴 수 없다는 회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빠르게 번지는 투자 성공 소식 등이 결합되며 개개인의 박탈감은 상수가 됐다”며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낮아지는 풍토에서 ‘잠깐 투자로 쓰고 되돌려놓으면 되겠지’라는 식의 생각이 공금에까지 손을 대게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도 탐욕과 범행 규모를 키웠다. 계양전기는 6년간 계속된 김씨의 일탈을 몰랐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검은 욕망을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잡아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피의자들은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했고 대형 횡령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