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기’ LH 친인척들, 고작 수백만원 벌금형

국민일보

[단독] ‘투기’ LH 친인척들, 고작 수백만원 벌금형

전북 집단투기 세력 첫 유죄 선고… 땅 소유권은 그대로

입력 2022-03-27 00:05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쇠수사대가 경기 광명시 LH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국민일보DB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투기 혐의가 있는 425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검찰 송치는 사태의 끝이 아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처벌을 받을지는 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

처벌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지난 15일 전주지법 형사제7단독 장진영 부장판사는 LH 전북지역본부 직원이 연계된 광명 노온사동 집단투기 사건을 판결했다. LH 직원의 친인척인 피고인 5명은 농지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각각 500만(2명)·700만(2명)·10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됐다. 노온사동에 땅을 산 투기 세력으로서는 첫 유죄 선고다. 그렇지만 해당 토지 소유에 대한 이들의 지위는 변한 게 없다. 개발 방식에 따라 여전히 수억원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의 투기는 ‘약간의 수업료를 낸 성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벌금형을 받은 5명 가운데 A씨는 LH 부장급 직원 최모씨의 조카이자 고용노동부 공무원이다. A씨 외삼촌인 최씨는 현재 LH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혐의(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로 별도 재판을 받고 있다. B씨는 A씨의 배우자다. C씨는 최씨의 친형이자 A씨의 또 다른 외삼촌이다. D씨는 C씨의 배우자고, E씨는 D씨의 조카이자 광주 모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육공무원이다.

LH 직원의 친인척인 이들 5명은 2019년 10월 25일 노온사동에서 밭을 샀다. 기존에 2845㎡(860평) 한 필지이던 땅을 셋으로 나눠 A·B씨 부부가 1138㎡, C씨가 853㎡, D·E씨가 854㎡를 소유했다. 거래금액으로 각각 4억600만원, 3억450만원, 3억450만원을 지불했다. C씨는 3억450만원의 약 80%인 2억4000만원을 광명농협에서 빌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들이 LH 직원 최씨에게서 정보를 받아 땅을 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C씨 동생인 최씨가 LH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며 “이들 5명이 비정상적으로 토지개발계획에 관한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LH 정보를 이용해 땅을 산 행위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행위만 처벌했다. 검찰과 경찰이 이들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자경할 뜻이 없으면서 처음부터 시세차익을 노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C씨는 전주에 터를 잡고 오랫동안 살아왔고 A씨와 B씨도 전주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E는 광주에서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며 “자동차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농지를 자경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LH전북지역본부 직원과 그의 친인척 등이 매입했다고 알려진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 부동산 광고물이 부착돼 있다. 광명=권현구 기자

공무원인 A씨와 E씨가 각각 벌금 700만원을, 땅 매입을 주도한 C씨가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해당 토지에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재판 기간 땅을 처분 못 하게 하는 기소 전 몰수보전 기록도 없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언급했지만 이들의 재산상 손해는 크지 않다.

이들이 산 노온사동 땅의 ㎡당 공시지가는 2019년 1월 26만9700원, 2020년 27만9400원, 2021년 30만4400원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앞으로 차익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주변 지역 감정가를 고려하면 평당 최소 50만원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0억 주고 산 땅이 15억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발이 진행돼 수용이 아닌 환지나 대토 방식으로 보상받으면 더 큰 수익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고용노동부 공무원 A씨는 과거에도 전주에서 농지를 산 뒤 되팔아 이득을 봤다. 그는 2010년 전주 완산구 효자동 2가에서 밭 1633㎡를 2억8600만원에 샀다가 5년 뒤인 2015년 3억5000만원에 팔아 6400만원 차익을 얻었다. 이 땅을 매수한 곳은 유한회사인 효천산업인데, 이 회사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A씨 외삼촌 최씨가 LH 동료 2명 등과 함께 차명으로 설립한 곳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전주 효천지구 개발을 앞두고 이곳에서 골프연습장 환지수요공모에 응모해 골프장 시설을 매수했다. 효천지구 개발로 골프연습장 가치가 크게 상승하면서 약 119억원 이익을 봤다. 최씨는 2017년 LH 전북지역본부 보상관리부 부장으로 효천지구를 담당했다.
참여연대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LH 투기 사건 1년, 무엇이 바뀌었나?' 좌담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LH 직원의 친인척이 벌금형에 그친 이유는 업무상 비밀을 이용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부패방지법에 규정된 ‘업무상 비밀 이용의 죄’는 정보를 받은 사람도 비밀임을 알아야 해 입증이 까다롭다. 이에 따라 국회는 지난해 공공주택특별법을 개정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경우 최대 10억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미공개 정보’의 범위가 ‘업무상 비밀’보다 폭넓지만 당사자들이 부정하고 물증이 없을 경우 이 역시 입증은 쉽지 않다. 앞으로도 LH 직원 친인척의 투기는 강력한 처벌을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얻었을 때 이를 환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 이강훈 변호사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토지초과이득세법 부활, 종합부동산세 토지분 강화 등 조세 제도 정비를 통해 투기를 방지해야 한다”며 “토지 보상 관련 규제도 강화하는 등 여러 제도의 박자가 맞아야 투기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권민지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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