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도 멀쩡한 스위스 벙커, 한국은 화장실도 못 써 [이슈&탐사]

국민일보

핵에도 멀쩡한 스위스 벙커, 한국은 화장실도 못 써 [이슈&탐사]

[유리벙커] ③대피소 관리 손 놓은 정부

입력 2022-04-19 11:00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시민들이 지난달 12일 한 건물 지하에 임시방편으로 만든 간이 방공호에 숨어 작은 출입구로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AP뉴시스


대피소를 잘 구축해 ‘방호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나라는 스위스 이스라엘 러시아 등이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전에 대비한 대피소를 부지런히 지어왔다.

스위스는 1975년부터 건물을 신축할 때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한 주민 대피소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했다. 대피소에는 2주간 지낼 수 있을 만큼 식수·식량·구급약품을 구비하도록 하고 있다. 90년대부터는 개인·연립주택과 각종 빌딩 지하에 대피소 36만개를 구축했다.

모든 대피소는 재래식·화생방 무기는 물론 핵 폭발까지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매년 2월 첫째 주 수요일에는 전국적으로 대피 훈련을 한다. 이날 스위스인들은 사이렌이 울리면 집이나 대피소로 이동해 라디오 안내방송을 청취한다.

이스라엘은 도시 외부에 콘크리트 방호벽을 쳐 간이형 대피소를 마련했다. 수시로 폭발물 공격이 발생한 경험을 반영한 조치다. 고층 건축물 각 층에는 공조 시스템을 갖춘 안전실을 운영한다. 내부 대피소다. 농촌은 집집마다 지하 시설물을 설치해 대피소로 쓰도록 하고 있다. 1년에 한 차례 사이렌이 울리면 방호시설로 몸을 피하는 민방위 훈련을 진행한다.

관람객들이 2015년 12월 15일 러시아 모스코바에 있는 지하 핵방공호 ‘벙커-42’를 관람하고 있다. 현재는 냉전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방공호는 구 소련 시절 실제 지하 핵방공호였는데 핵무기 공격에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신화뉴시스

러시아는 70년대 후반 핵 공격을 받더라도 인구의 97~98%가 피신할 수 있는 수준의 대피소 구축을 완료했다. 80년대에는 대피소 구축에만 매년 20억~30억 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안보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 대피소는 3일 이상 머물기 굉장히 어렵고 지하철 역사 한 곳에 1만명씩 대피한다면 인명 피해는 별개로 하더라도 화장실을 쓰는 것부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연구위원은 “선진국이라면 적어도 인구에 비례해 어떤 시설을 어느 정도 규모로 확보해야 하는지 나름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민방위 시설이 전시에 적합한지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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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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