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선처세트 팔아요~’ 엉터리 심리상담에 55만원[이슈&탐사]

국민일보

‘성범죄자 선처세트 팔아요~’ 엉터리 심리상담에 55만원[이슈&탐사]

[상담시장 X파일] <3화>영혼 없는 반성

입력 2022-05-27 00:02 수정 2022-05-27 00:02
성범죄 피의자로 가장한 이슈&탐사팀 이동환 기자가 A심리상담센터에 심리상담 소견서 발급을 문의하고 있다. 심리상담 센터들은 소견서가 법정에서 선처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홍보한다. 이한형 기자


“제가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 사진을 SNS에 올렸거든요. 또 그거 때문에 싸우다가 새벽에 걔네 집까지 막 찾아갔더니 고소한다네요. (인터넷) 카페 같은 데 찾아보니까 여기에서 수료증 받으면 선처를 해준다고 해가지고 ….”

떨리는 목소리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상담을 받으려면 파렴치한이 돼야 했다. 상대는 범죄를 저질러서 고소당한 이들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심리상담 소견서를 써준다는 A심리상담센터였다. 주로 성범죄 피의자들이 찾는 곳으로 소문나 있었다. 딱 봐도 벌벌 떨고 있는 초짜 범죄자에게 수화기 너머로 나긋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 남자는 흔한 일이라는 듯 “입금해주시면 그 이후 절차를 안내해드린다”고 말했다.

제가 무서워가지고

위장 취재를 위해 지난달 26일 이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담을 신청했다. 15분도 안 돼 전화가 걸려왔다. 돈부터 내라는 그를 붙들고 이것저것 물었다. 계속해서 불안함을 토로했다. “제가 무서워가지고 ….” 말 끝마다 이 말을 반복하는 기자에게 남자는 ‘경찰에 고소장 접수도 안 됐는데 뭘 이렇게 꼬치꼬치 물어보느냐’는 눈치였다. 그는 마지못해 던져주듯 하나씩 대답했다. 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찌질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혼자 속으로 삼켰다.

A심리상담센터가 홈페이지에 샘플로 올린 범죄자용 심리교육 수료증과 심리상담사 의견서. 업체는 "심리교육 수료증을 제출해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광고한다. A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캡처

그들은 ‘선처세트’를 팔고 있었다. 심리상담 수료증, 상담 결과에 대한 의견서, 소감문 이렇게 3종이다. 이 세트는 가장 싼 게 38만5000원이었다. 이건 ‘제작비’다. 서류를 실제 내주는 발급비는 따로 받았다. 수료증 온라인 발급이 5만원이고 원본을 등기우편으로 받으려면 2만원을 더 내야 했다. 의견서까지 가져가려면 5만원이 더 들었다. 소감문은 얼마인지 설명이 없었는데 역시나 5만원을 받는다면 추가금만 17만원이다. 그럼 다 합쳐 55만5000원이 든다.

기본 세트는 교육 기간을 7일로 잡는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심리상담을 오래 받을수록 ‘착해지려고 노력했구나’하는 인상을 강하게 줄 테니 죄질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기간을 길게 잡을 것이다. 그럼 정말 갱생 노력을 하기는 한 거 아니냐고? 그랬다면 좀 나았을까. 기간은 서류에 찍어주는 숫자일 뿐이었다. 실제론 단 한 번, 5~10분만 통화하면 됐다. 그냥 전화로. 대표인지 직원인지 모를 남자는 이 초고속 비대면 절차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읍소하는 법도 알려주나요?

A센터는 심리상담사라는 3명의 자격증을 홈페이지에 큼직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이런 전문가들이 여러분을 도와줄 겁니다. 이렇게 자랑하는 듯했다. 그대로 믿자면 셋 다 똑같은 세 가지 자격을 보유했다. 심리상담사 1급, 스피치지도사 1급, 가족심리상담사 1급 혹은 2급. 이것들을 주욱 늘어놨는데 화질이 낮고 조악해 같은 자격증에 얼굴만 바꿔가며 합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낮은 화질 탓에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처럼 알아보기 어려웠다.

A심리상담센터가 자사 상담사들의 자격증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전문성을 강조하는 모습. 이들 자격증은 이슈&탐사팀 박장군 기자가 2시간 만에 딴 1급 심리상담사와 마찬가지로 쉽게 딸 수 있는 민간자격이다. A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캡처

세 자격증 모두 발급기관은 무슨 평가원이다. 번지르르한 이름에 속지 말자. 이 평가원은 이름만 국가기관의 냄새를 풍길 뿐 정부와 무관한 사설업체다. 슈퍼마켓 이름을 ‘청와대’라고 지은 거랑 같다. 이 업체도 취재팀 기자가 2시간 만에 심리상담사 1급 자격을 딴 업체처럼 자격증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 A센터가 내세운 세 자격증은 각각 8만원(발급비)짜리였다. 수강료와 응시료는 이런 업체가 다 그렇듯 공짜였다.

자 그럼 계산해보자. 8만원짜리 자격증이 9장(3장×3명)이니 A센터가 ‘자격 만들기’에 투자한 비용은 72만원. 교육 기간 7일짜리 기본 선처세트가 발급비·배송비 포함 55만5000원이니 2세트(111만원)만 팔아도 39만원이 남는다.

A센터는 ‘각 전문 분야 심리상담사가 내담자의 양형 기준에 도움되는 수료증을 수료해드립니다’라고 홍보했다. 어법에도 안 맞는 문구인 건 일단 제쳐 놓자. 각 분야 전문가라면서 스피치지도사 자격을 내세운 건 경찰이나 판사에게 사정하는 법을 훈련시켜준다는 걸까. 경찰에 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는 거냐고 물으니 남자는 “아니요. 그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스피치지도사는 자격 부풀리기용 장식인 듯했다.

그들 뒤엔 로펌이 있었다

신세계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업체가 많았다. 대부분 돈만 내면 딸 수 있다시피 한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내걸고 영업 중이다. 이들은 50만~100만원을 내면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이나 전화 상담만으로 맞춤형 소견서를 뚝딱 만들어준다. 의뢰인들은 이걸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내고 “내가 이만큼 애썼으니 좀 봐달라”고 사정한다.

이들 업체 홈페이지나 블로그에는 각종 범죄 피의자들이 법정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는 내용의 홍보글이 영웅담처럼 내걸려 있다.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본 ‘고객들’의 자필 후기도 단골 홍보 메뉴 중 하나다. 일부는 심리상담 소견서나 교육 수료증 말고도 법원에 제출할 반성문이나 탄원서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돈을 받는다.

A심리상담센터 대표는 반성문과 탄원서를 대필해주는 일종의 자매회사를 함께 운영 중이다. 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A센터도 반성문과 탄원서를 대필해주는 일종의 자매회사를 같은 대표 이름으로 함께 운영 중이었다. 그러니까 중형을 받을까 봐 조마조마해 하는 피의자들을 타깃으로 선처 호소용 종합세트를 파는 이들인 셈이다.

범죄 피의자 전문 심리상담업체 중 일부는 법무법인(로펌)과 연결돼 있었다. 성범죄 관련 정보 공유 커뮤니티임을 표방한 모 인터넷 카페는 협력업체라며 B심리상담소에 전용 게시판을 내주고 있었다. 이들은 이걸 ‘입점’이라고 표현했다. 이 카페 대표가 현직 변호사다. 그는 서울대 법대와 검사 출신 형사 전문 변호사들임을 홍보하는 로펌을 운영하고 있었다. 취재팀이 몰카범인 척하고 카페에 글을 올렸더니 ‘○○실장’이라는 사람이 “변호인과 상담은 해보셨느냐”며 “카메라 촬영에 대한 혐의는 조사 전부터 방향을 잘 잡고 대응해나가야 한다. 카페 변호사님과 무료상담으로 조언을 받아보시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댓글을 달았다. 그가 남긴 웹사이트 링크는 해당 로펌 홈페이지로 넘어갔다.

B상담소 대표는 카페 운영진으로도 올라 있었다. 채팅으로 문의하자 이 상담소는 ‘성범죄, 성폭행, 성도착 등의 성에 관련한 특별상담’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담비는 회당 10만원. 오후 7시 이후엔 1만원이 더 붙었다. 권장 상담횟수는 5회다. 상담소 측은 이걸 꼭 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지만 소견서를 받으려면 5회분 비용 50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이 상담소에서 자기 잘못을 반성하며 상담만 받으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발급비 2만원은 별도다.

자격증 준 업체가 사라졌다

B상담소는 대표 상담사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고 관련 민간자격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유 자격은 심리상담사, 심리분석사, 분노조절장애상담사, 부부심리상담사였다. 발급 업체를 묻는 취재진에 그는 ‘한국자격검정진흥원’이라고 했다. 이 업체는 민간자격 발급업체를 관리하는 국책기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명단에 올라있긴 했지만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업체가 등록 당시 적어낸 전화번호로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멘트만 나온다. 홈페이지도 없다. 이름이 비슷한 한국자격검정평가진흥원은 “다른 업체”라고 대답했다.

취재진이 B심리상담소 측과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상담소는 상담사 자격 발급기관이 '한국자격검정진흥원'이라 소개했다. 민간자격을 발급하는 해당 업체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카카오톡 대화창 캡처

B상담소 대표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준회원이라는 이력도 기재했다. 이들 학회 준회원 자격은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한 뒤 신청만 하면 주어진다. 전공자인 거지 전문가임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성범죄 정보 카페 대표 운영자인 변호사는 ‘회원들의 심리적 안정과 복지’를 위해 소액의 광고료를 받고 상담소를 입점시켰다고 설명했다. “연결을 시켜드리는 게 아니고 제휴업체, 입점업체예요. 그쪽에서 정확히 어떤 상담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심리상담 자격증이 있고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 분이라 입점하겠다고 하니 굳이 저희가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없었던 걸로 알아요. 어쨌든 심리적으로 불안한 분들이 있는 상황이고.”

성범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게시판 목록 일부. 변호사가 운영하는 이 카페는 B심리상담소를 제휴업체로 '입점'시키고 전용 게시판을 내줬다. 해당 인터넷 카페 캡처

변호사는 “이분(상담사)이 ‘나한테 돈을 주고 상담을 받으면 감형을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한다면 그건 불법이 될 것”이라며 “그런 게 보인다면 저희가 퇴출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불만을 제기한 사례가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B상담소에서 받은 소견서 등을 양형자료로 자신에게 가져온 의뢰인도 아직 없었다고 한다.

범죄심리상담을 전문으로 한다는 C심리상담센터 대표가 이 분야로 발을 넓히게 된 과정에도 변호사들이 등장한다. 본업이 따로 있는 C센터 대표는 부업으로 여러 사업을 해보다 심리상담에 관심이 생겨 모 온라인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하루는 피의자가 된 지인을 상담한 뒤 의견서를 써줬다. 사건이 잘 해결되자 그의 의견서가 입소문을 탔다. “변호사들의 소개를 받은 피의자들이 계속 찾아와 부업으로 심리상담센터까지 차리게 됐다”고 C센터 대표는 말했다. 이 업체는 홈페이지에 법무법인 3곳을 언급하며 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고 안내했다.

기자를 혼낸 상담사

C센터에도 성범죄 피의자로 가장하고 선처 호소용 심리상담을 문의했었다. 역시 이곳도 상담을 비대면으로만 진행하려 했다. 코로나19 핑계를 댔다. “근데 이게 비대면이라고 해서 요식행위가 이뤄지는 건 아니고 처음에 심리검사지랑 성장환경에 대한 조사를 저희가 해요. 그거 회신해주시면 질문지를 드려요. 비구조화된 면담이라고 해서 이건 인터뷰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그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드리고 ….” A센터보다는 체계적이었다. 상담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을 발급해준다. 40쪽에 달하는 ‘범죄심리의견 및 재범위험평가서’라는 것도 써준다고 한다.

범죄 피의자로 가장한 이슈&탐사팀 이동환 기자가 "억울하다"고 말했다가 C심리상담센터 대표에게 꾸중을 들은 뒤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한형 기자

C센터 심리상담 서비스는 40만원과 100만원짜리로 나뉘었다. 40만원짜리는 심리 검사 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끝난다. 상담까지 진행하는 건 100만원짜리다. 선처를 받으려면 상담까지 받아야 하느냐고 묻자 C센터 대표는 “그건 법률적인 부분이라 ‘저희 상담센터 의견서가 선처를 이끌어냅니다’라고 하기에는 사실 부끄럽다”며 “아무래도 저희 협력 변호사님들이 선처를 많이 이끌어내신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냈다는 뉘앙스였다. 겸손한 설명에 뭔가 신뢰감 같은 게 들었다. 대표는 홈페이지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로펌 소속 변호사들 이름을 대며 종종 함께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중엔 성범죄 사건 변호로 유명한 로펌도 끼어 있었다. A센터를 언급했더니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거긴 그냥 돈 내면 의견서 한 장 해주더라”며 “거기 갔다 저희한테 오시는 분 되게 많다”고 강조했다.

지나가는 말로 “억울하다”고 했다가 혼났다. “억울하다는 거는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법을 어기셨는데 거기서 억울하다고 하면 저희는 상담을 진행해 드릴 수가 없어요. 사람을 죽여 놓고 억울하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여자친구를 촬영해 놓고 억울하다고 하면 답을 드릴 수가 없는 거잖아요.” 부드럽지만 완고한 말투였다.

C심리상담센터 대표는 범죄 피의자들의 감형을 위해 심리상담 소견서를 발급하는 업체가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 업체 홈페이지에는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C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캡처

그는 “저희는 돈 준다고 양형자료를 만들어주는 상담센터가 아니다. 선처를 받고자 하면 그냥 A센터에 가는 게 낫다”고도 했다. “저희도 상담윤리가 있다. 전화를 안 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런 일갈을 듣자니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났다. 진심인지 상술인지, 혹은 취재임을 눈치챈 건지 헷갈렸다. 일단 홈페이지엔 ‘우리 센터의 범죄심리의견서는 양형 참고자료로 법원과 검찰에 제출되어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마케팅 도구’ 된 판결문

그렇다면 이런 심리상담센터들이 만들어주는 소견서가 정말 처벌 수위를 낮춰줄까. 업체들은 심리상담 이력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인정된 것으로 쓰인 판결문을 들어 “이거 봐라, 효과가 있다”고 홍보한다. 실제로 그런 문구를 판결문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고인이 재범 방지를 다짐하며 봉사활동을 하거나 심리상담을 받는 등 노력을 보인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여 형을 정하였다.”

“스스로 심리상담치료와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고 (중략) 모든 양형조건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

“당심에 이르러 잘못된 성적 욕구를 치료하기 위해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여 상담하는 등 재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점 ….”


취재팀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공개된 성범죄 관련 판결문 중 ‘심리상담’이 언급된 59건을 분석했다. 적어도 문구상으로는 심리상담 이력이 재범 방지나 갱생 노력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59건 중 피고인 정상참작용으로 심리상담이 제시된 사례는 36건이었다. 재판부는 그 중 86.1%인 31건에서 심리상담을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기술했다. 이들 혐의는 몰카(11건) 음란물(9건) 추행(5건) 공연음란(3건) 미성년강간(3건) 등이었다.

한 남자는 미성년자인 친딸에게 몹쓸 짓을 해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는데 2심에서 7년으로 깎였다. 판결문엔 “심리상담을 받는 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런 사례만 놓고 보면 ‘심리상담’이라 쓰고 ‘면죄부’라 읽어야 할 것 같다.

“심리상담, 감형 도움 안 된다”

심리상담이 감형에 도움이 된다는 업체들 주장에 대해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하나같이 터무니없어 했다. 심리상담 여부나 결과는 애초 유무죄를 가르거나 형량을 정하는 핵심 양형기준이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설명했다. 성범죄 등 형사사건에서 재판부가 중요하게 판단하는 기준은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지, 초범인지 재범인지, 피해를 충분히 배상했는지(합의)라고 한다.

한 고등법원 형사재판부 부장판사는 “양형기준에는 그런 게(심리상담 여부 같은 게) 전혀 없다”며 “전통적인 것도 아닌데 그분들이 개발하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인데 ‘가해자가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 하는 정서가 우리 사회 저변에 있지 않으냐”며 “(심리상담 소견서 장사도) 그런 걸 이용한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B심리상담소를 인터넷 카페에 입점시킨 로펌은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각종 대처법을 알려주는 온라인 블로그를 따로 운영 중이다. 해당 로펌 블로그 캡처

임지훈 임지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하는 하나의 마케팅이라고 본다”며 “법원에선 의사 소견서가 아니면 인정도 안 해주는데 단순 심리상담 정도를 유리한 양형요소로 내세우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자 대상 심리상담은) 실제 법원에서 아주 중요하게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를 갖고 장사를 하는 것 아닌가 한다”며 “(심리상담 이력이) 양형에 영향을 주느냐 하면 저는 지푸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자백하는 사건은 다툴 만한 쟁점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실 변호사도 필요 없다. 판사도 심리상담 소견서를 내면 읽어보지도 않을 것”이라며 “심리상담을 안내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피의자의 절박한 심정을 낚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범죄자를 상대로 한 심리상담 소견서 장사를 ‘창조경제’라고 꼬집었다.

꼼수시장만 자꾸 커진다

심리상담 이력이 형량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지만 죄를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간접 자료는 될 수 있다. 마약범죄자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재활교육을 이수한 사실을 제출해 마약을 끊으려는 노력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아무것도 안 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앞서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임을 강조한 판사는 “피고인이 얼마나 반성하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에 대해선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이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내서 한 걸 낮게 평가하기만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들을 자꾸 개발해서 법원에 들이대고 있다”며 “그런 방법들이 (양형에) 중요한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이렇게 자꾸 틈새를 파고들면 저희(판사들)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선처를 염두에 두고 여성단체나 성범죄 피해자 지원단체에 기부하기도 한다.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씨가 2심 재판 진행 중 베트남 여성과 혼인신고를 한 뒤 “부양가족이 생겼다”며 선처를 호소한 사례도 사법부 판단의 틈새를 파고든 예로 꼽힌다.

C심리상담센터는 업무협약을 맺은 로펌들 이름을 홈페이지에 밝혔다. 자신들이 작성한 심리상담 소견서가 변호인을 통해 활용돼 기소유예와 선고유예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홍보했다. C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캡처

이 틈새시장에서 이득을 보는 건 함량 미달 사이비 심리상담업자와 일부 변호사다. 이들은 심리상담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양 포장한다. 뭐라도 붙들어보려는 이들에게 심리상담업자는 상담료를, 변호사는 수임료를 챙긴다. 어떤 변호사들은 피의자와 상담업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업자로부터 일종의 중개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한 변호사는 “성범죄는 유죄 확률이 높아져서 돈이 되는 영역”이라며 “성범죄에 대한 최근 법원 경향이 피해자 쪽으로 기울다 보니 가해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불리해져 달리 표현하면 (범죄자 대상 심리상담) 시장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백재승 법무법인 테미스 파트너변호사도 “소견서는 상술로 보인다”며 “감형만을 위한 심리상담 소견서를 발급해주는 업체가 만연한다면 제대로 심리상담을 해주는 업체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억울한 자, 당당한 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에게 심리상담을 하고 소견서를 파는 건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지금 성폭력 전과자가 피해자를 상담하는 지경인데 가해자들을 상대로 (선처용 심리상담) 영업을 활발하게 한다는 건 더 악성”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제가 법원 조사관 교육을 하는데 반성문처럼 제출하는 서류를 감형 근거로 삼지 말라고 한다”며 “가짜 상담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분을 밝힌 취재진이 소견서 장사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당사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C센터 대표는 자신은 제대로 된 심리상담을 해왔다며 억울해 했다. “A센터 같은 곳들과는 달리 저희는 보통 상담기록이 40페이지가 나가요. 읽어보는 판사님도 계시고 정말 피고인이 많이 반성하는 게 느껴져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 주신 경우도 많죠. 피의자 부모님들이나 청소년 피의자들이 고맙다고 말씀 많이 하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C심리상담센터는 홈페이지에서 범죄 피의자들에게 "내담자분들께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들 심리상담센터는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법조인들은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C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캡처

심리상담 소견서를 날림으로 만들어주는 A센터도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표인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남자는 당당했다. “양형에 도움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실제로 의뢰인들이 전해주신 판결문에 ‘심리치료 병행하고 있고 재발 방지 교육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된 사례들이 충분히 있거든요.” 이들이 착각하는 거라면 아무래도 판사들이 판결문 쓰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범죄자 전문 심리상담센터들의 문제는 소견서 장사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업을 영위하는 방식 하나하나가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었다. 쫓을수록 유령처럼 느껴졌다. 다음은 이들의 실체를 추적한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 시리즈는 국민일보 홈페이지 이슈&탐사 코너(www.kmib.co.kr/issue)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100회분 결제? 조심하세요” 좋은 심리상담 받는 꿀팁[이슈&탐사]
심리사냐 상담사냐… 심리상담, 법이 없다[이슈&탐사]
성범죄자도 몸치료 OK… 엉터리 법에 무법천지[이슈&탐사]
“나랑 놀래?” 심리상담센터 대표의 한밤 취중 카톡[이슈&탐사]
“평소 자위 좀 하세요?” 유명 심리상담사가 물었다[이슈&탐사]
뭐지? 당신들 유령인가… 범죄심리상담업체의 실체[이슈&탐사]
“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이슈&탐사]
엉터리 심리상담사 자격증, 3주 만에 187명이 낚였다[이슈&탐사]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